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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감상문

메트로 2033

by ehei 2010. 10. 14.

찬사를 보내야겠다. 핵전쟁 이후를 그린 소설 중에 최고로 꼽고 싶다. 남은 생존자들이 지하철에 몰려 살며 겪는 이야기를 쓰다니... 정말 지하철은 대피 목적으로도 건설되지 않았는가. 게임 '폴아웃(Fallout)'의 대피소인 볼트(Vault)와 같은 존재이면서도 서로 통로로 연결된 덕에 이야기가 더욱 풍부해졌다. 통로에 가득찬 환상과 공포. 이념으로 분화된 인간 군상. 게다가 괴생명체까지. 굉장하다. 흡사 게임을 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읽다보니 소설 속의 인물들이 겪는 공포와 좌절이 느껴진다. 주제넘게도 한국판 메트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블로그에 연재한 소설을 모은 것이라 한다. 그래서인지 각 장마다 흥미롭기는 한데 뭔가 어색한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큰 흠은 아니지만 언급해보자. 일단 사망율이 매우 높다. 출산율은 확실히 낮아 보인다. 게다가 각 집단이 무장한 상태여서 무력 분쟁도 잦다. 좀더 출산 장려가 필요하다. 이러다가는 검은 존재고 뭐고 저절로 망할 것 같다. 한편으로 정부 비축의 비타민을 섭취한다고 한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배급하는지 궁금했다. 역마다 비축되어있지는 않을텐데. 합성 비타민은 흡수가 잘 안되서 매일 먹어줘야 하는데 말이다. 환기구도 없는데 산소 부족을 호소하지도 않는다. 가만, 주인공이 꾸는 악몽들이 그런 까닭인가?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잘도 숙면을 취하는 것 같던데... 게다가 가축의 분뇨가 대량의 가스를 발생시키는데도 잘도 돼지와 닭을 키우고 있다. 음습한 공간에 사는데도, 대부분 건강한 점도 신기하다. 괴생명체의 습격이 가장 무서울 위협일 정도이다. 어쩌면 버틸 수 있는 자들로 이미 걸러졌는지도... 나라면 적응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하지만 폴아웃 게임의 충격을 잊지 못하는 내게 이 소설은 여전히 대단하다. 바라볼 수 없는 크렘린 궁전, 정체 불명의 사서, 창조된 큰 벌레 그리고 검은 존재... 가끔은 러시아판 SF 전설의 고향 같을 때도 있긴 하다. 하지만 멋진 세계관과 그에 못지 않은 훌륭한 묘사는 정말 일품이다. 아, 결말에 대한 소감도 써야겠다. 나는 주인공의 생각에 그리 공감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그들로 인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말이다. 그들이 정말 그럴 의사가 있었다면 좀더 평화적인 수단을 생각해야했다. 그들도 분명 부작용을 봤을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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