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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끄적

뉴질랜드 신혼 여행 일기

by ehei 2011. 1. 1.

집 청소를 하다가, 2008년에 뉴질랜드에서 신혼여행을 하면서 쓴 일기를 발견했다. 고생도 많이 하고 재미도 있었는지라 이대로 잊어버리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내용을 옮겨보기로 한다.


11월 8일

인천 공항에서 수속을 밟았다. 처음부터 문제가 생겼다. 환승을 위해 먼저 탑승해야할 대한항공 좌석에 우리 것이 누락되어 있었다. 공항 직원이 한참 확인했으나 마찬가지였다. 계약한 혜초여행사에 전화를 했다. 휴대전화도 두고 온 지라, 부랴부랴 전화카드를 사야 했다. 직원은 뉴질랜드 항공 측의 착오일꺼라 했다. 일단 대한항공 좌석이 발권된 기록이 있고, 혹시라도 출발하지 못하면 배상을 해주겠다고 했다. 어찌되었든 환승지인 베이징에서 서울로 돌아올 경우, 수하물만 뉴질랜드로 가게 된다... 짐에는 약간의 돈과 캠퍼밴을 운전하기 위한 국제 면허증이 들어있었다.

다른 선택도 없는지라, 운에 맡기고 베이징에 가기로 했다. 어쨌든 대한항공 티켓은 발권이 되었다. 3구 컨센트를 구입했다. 그리고 베이징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1시간 정도로 짧았지만, 기내식도 나왔다. 베이징 시간이 1시간 빨라 시간 개념이 모호해졌다. 내렸는데 막막했다. 눈치껏 승객들을 따라 수속을 밟았다. 공안이 여권, 항공권, 도착지 카드를 조사했다. 어설픈 영어로 환승하겠다고 했다. 정말 막막했다. 이래서 패키지로 가는구나 싶었다.

그렇게 통과는 했지만, 어디서 환승을 하는지 도대체 알 수 없었다. 맨 처음 물어본 중국 아가씨는 2층으로 가라고 했다. 거기서 3번 터미널로 가라는 도움을 얻었다. 우리는 3번 터미널 간판을 찾으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 대한항공 직원을 찾아 도움을 받았다. 알고보니 셔틀버스를 타야 했다. 2층에서만 헤매서 1층에서 셔틀버스를 타야하는지도 몰랐다. 버스를 타고 보기에도 굉장히 큰 제 3 터미널에 도착했다. 이제 어디서 티켓팅을 하느냐가 문제였다. 또 묻고 물어서 에어뉴질랜드 부스에 갔다. 근데 무슨 이런 일이... 시스템에 장애가 생겼다고 했다. 기다리는 동안 예매가 제대로 되었을까 불안했지만 다행히 완료되었다. 제 3터미널이 얼마나 먼지 전철을 타고도 한참 갔다. 전철에서 내린 후 검색 과정에서 참치캔을 뺏겼다. 중국까지 와서 일부러 챙긴 참치캔을 뺏기니 얼마나 억울하던지... 어쨌든 뉴질랜드행 비행기에 타니 안심이 되었다.



승객 대부분은 중국인. 중국인 승무원이 내 영어를 잘 못 알아들어 힘들었다. 우유를 달라고 'milk'를 연발했는데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손짓으로 겨우 얻어 마실 수 있었다. 승무원이 발음을 하는 걸 들으니, 'k'발음 없이 'l' 발음에서 혀를 굴렸다. 여지껏 겪었던 일들로 심적으로 힘들었다. 거리가 꽤 되는지라 8시간 이상을 잤다. 일어나니 기내식을 나눠주고 있었다. 오믈렛, 누들 중에 선택해야 했는데, 뭘 원하냐는 승무원 말에 답하기가 어려웠다. 고심 끝에 'one egg one nuddle'이라고 말해서 받았다. 마침내 화창한 날씨의 뉴질랜드에 도착했다. 중국인 환자가 생겨서 먼저 나갔다. 첫날이라 그런가... 정말 다사다난했다.



착륙 즈음에서 찍은 사진



11월 9일

오클랜드 공항에 도착했다. 검색 과정에서 김과 소금을 신고하고 출국장을 빠져나왔다. 김은 그렇다 치고, 소금은 왜 가져왔을까. 택시를 타고 예약된 호텔로 향했다. 체크인하는데 하루에 15$라고 했다. 그런데 신용카드가 승인이 안되었다... 현금으로 지불했다. 화장실 배수구 위치가 묘해서 물이 고이면 방으로 향한다. 이제 차를 가져오기로 했다. 우리는 뉴질랜드 캠퍼밴이란 상품으로 여행을 하기로 결정했다. 캠핑카를 타고 원하는대로 여행을 하면 된다. 자유스러운 것이 좋아서 꼭 이렇게 여행하고 싶었다. 캠퍼밴을 가져오려면 렌트카 업체인 마우이 지점으로 가야했다. 역시 택시로 이동했다. 무료 매뉴얼은 죄다 집어들었다. 연료나 지도 값으로 돈을 내야하는데, 여기서도 신용카드 승인이 안되었다. 불안해졌다. 신용카드가 있으니 현금을 많이 가져오지 않았다. 현금 만으로는 한참 부족했다. 어쨌든 현금으로 치뤘다.

이제 캠퍼밴에 식품을 사서 채워야한다. 우리는 라면조차 가져오지 않았다. 가져온 것이 고작 김과 소금... 수퍼마켓 위치를 물은 뒤 드디어 시동을 걸었다. 승용차만 몰다가, 트럭만한 차를 운전하니 심적으로 힘들었다. 초보운전의 느낌이다. 운전하기는 쉽지만, 운전대가 오른쪽에 있다. 습관이란 참 무섭다. 오른쪽 백미러를 안 보고, 한국에서처럼 왼쪽 백미러만 보려고 한다. 지도를 잘못 봐서 또 다시 엉뚱한 곳으로 갔다. 물어 물어서 수퍼마켓인 푸드 타운에 도착했다.

슈퍼마켓 앞


일단 집에 전화를 하기 위해 국제 전화카드를 구입하러 갔다. 근데 여기서도 신용카드 승인이 안되었다. 이제 심각해졌다. 여행사에 물어보기 위해서라도 얼마 남지 않은 현금으로 전화카드를 사야했다. 점원에게 전화 가능한 곳을 물어봤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캠퍼밴에 들어가 뉴질랜드 체류기간 내내 여기 있어야하는 건 아닌가 상의했다. 남은 돈으로 식품을 차서 주차장에서 시간을 보내야하나 싶었다... 그렇게 고민하는 와중에 한 가지를 알았다. 내가 가져온 카드가 VISA 마크는 붙어있지만 실은 체크카드였다. 혹시나해서 수퍼마켓 근처에서 보았던 ATM으로 향했다. 국내에 있는 내 계좌의 돈이 인출이 되었다. 기분이 너무 좋아졌다. 500$를 인출했다. 여행을 할 수 있어서 안심이 되었다. 들뜬 나머지 이것저것 많이 샀다. 이제 진짜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도중에 본 멋진 캠퍼밴


몇 차례 헤맨 끝에 해밀턴으로 향할 수 있었다. 그냥 쭈욱 가기만 해서 쉬웠다. 가는 중에 많은 캠퍼밴을 볼 수 있었다. 노부부가 큰 캠퍼밴을 몰고 여행하는 것은 근사해보였다. 도중에 있는 주차장에서 잠시 쉬었다. 놀이터도 같이 있었다. 놀이터에도 수백년은 넘었음직한 나무들이 서있다. 여기에는 왜 이리 멋진 나무들이 많은지. 해밀턴에 도착해서 헤맸지만, 캠퍼밴 사이트를 찾았다. 이미 밤은 어둑어둑해졌다. 주변에는 온통 백인들 뿐이었다. 타국이라 그런가. 공중전화 쓰기도 어려웠다. 적혀있는대로 계속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밤 공기는 찼지만, 침낭은 따뜻했다. 게다가 신혼아닌가...


11월 10일


우리가 사용하는 캠퍼밴


일어나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타우포로 향했다. 근데 서양 음식이라 그런가. 왜 이리 느끼한지. 울워스 매장이 있어서 여기서도 쇼핑을 했다. 샐러드 감과 요거트 몇 개를 샀다. 안내서에 있는 타우포의 Top 10 캠퍼밴 사이트를 찾느냐 또 다시 헤맸다. 타우포 호수가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이었다. 날씨도 정말 화창했다. 남의 떡이 커보이는건가. 정말 하늘이 이렇게 높은지 여지껏 몰랐다고 생각했다. 기분이 좋아졌다.  근처에 차를 대고 호수를 거닐었다. 어찌나 평화롭던지... 여기서 정착해 살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몇 시간을 거닐었다. 저녁이 가까워져서 캠퍼밴 사이트로 향했다. Top 10이라 그런지 시설이 무척 좋았다. 입구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따뜻한 물이 나오는 수영장에서 놀았다. 식사 때 부인이 태국 쌀로 밥을 해줬다. 계란을 샀는데 기름이 없어 프라이를 할 수가 없었다. 삶았다. 백인들이 소시지를 굽는 모습이 맛있어 보였다. 마침내 부인이 전화거는 방법을 알아냈다. 뉴질랜드와 서울의 시간은 반대다. 장모님은 통화가 되지 않아, 처제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아버지에게 안부를 전했다.


타우포 호숫가



11월 11일

일어나자 한기를 느꼈다. 일단 아침을 챙겼다. 빵에 소스를 발라 먹었다. 덤프 사이트는 캠퍼밴에서 발생한 오수를 버리는 곳이다. 여기서 물을 버리고, 로토루아로 향했다. 안내소에 도착했다. 아 크로돔 양 쇼와 헬스 게이트 콤보를 이용했다. 양 쇼를 보는 목장으로 향했다. 그간 여행 내내 동양인을 전혀 보지 못했다. 그런데 여기서 한국, 일본, 중국 단체 관광객을 볼 수 있었다.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간간히 들려서 반가웠다. 양 쇼는 한국말로 소개해주는데, 진행자의 솜씨가 워낙 뛰어나서 재미있었다. 그러나 헬스 게이트는 유황 온천가를 거닐다가 진흙탕과 유황탕에 몸 담그는 것인데, 웬지 부족한 느낌이었다. 부인은 유황 냄새 난다고 투덜투덜 거리고... 온천도 아니고 관광도 아닌 어정쩡한 기분이었다. 헬스 게이트로 가는 길에 있던 로토루아 호수가 훨씬 근사했다. 수영도 하고 일광욕도 하고 싶었지만, 헬스 게이트를 보러 가기 위해 사진만 찍고 지나쳤다. 그게 몹시 아쉽다.



아크로돔 양 쇼



헬스 게이트


오늘도 숙박하기 위해 타우랑가로 가는 길에 있던 캠퍼밴 사이트를 찾았다. 들어가서 체크인을 해달라고 하는데, 말이 통하지 않았다. 메모지에 'check in'이라고 썼더니 그제서야 '체킨!'이라며 처리해줬다. 발음, 발음...  사이트는 호수 바로 옆에 있다. 보트를 달고 있는 캠퍼밴도 있다. 동전 세탁기가 고장나서 빨래를 하지 못했다. 냄비로 밥을 하는 부인의 솜씨가 나날이 나아진다. 연어 통조림을 먹었는데, 참치캔 마냥 먹을 수 있는 건 아닌 듯 싶었다. 비린 맛이 강하다.


캠퍼밴 사이트 바로 옆에 있는 호수



11월 12일

아침에 일어나 치킨 수프를 먹었다. 캔을 따다가 부인이 손을 베었다. 캠퍼밴에서 조리를 하려면 물도 보충해줘야 한다. 이런저런 일들을 처리한 후 목표한 타우랑가로 향했다. 다른 곳과는 달리 인파도 차도 제법 많았다. 시내로 들어서다가 일이 생겼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시내 구경을 하고 싶었다. 주차장은 구획도 없고 마구잡이로 차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나의 주차 실력으로는 너무 좁아 무리였다. 그냥 나가려는데 주차된 차를 접촉했다. 주위에는 사람들도 있었다. 캠퍼밴에는 주입구, 배출구가 있는 함이 튀어나와 있다. 그곳에 긁혔다. 그러나 짧은 영어 실력으로 어떻게 될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나갔다. 그 동안의 평안함이 순간 사라져버렸다.


날씨는 몹시 흐렸고 바람도 제법 찼다. 부인에게 핫초코를 사주었다. 호수에는 요트도 많았고 카누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파도가 심하게 치는 호수는 상당히 근사했다. 그러나 그만큼 추웠다. 오늘은 조금 일찍 캠퍼밴 사이트로 향했다. 이곳은 주인이 양이나 닭을 방목하고 있었다. 요금을 모두 동전으로 냈다. 동전이 모자라서 지갑을 꺼냈는데 괜찮다고 했다. 주차하고 둘러보니 돼지 세 마리도 있고 오리도 있고... 한적하게 여유를 만끽하며 사는 모습이 부러웠다. 여기는 이용객도 별로 없어 한적했다. 주방에서 그동안 밥을 했던 냄비를 깨뜨렸다. 불에 너무 오래 올려놓은 것 같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산산히 갈라졌다. 치우느냐 고생했다. 대신 빵을 먹었다. 해가 지자 주변이 온통 깜깜해졌다. 여행도 이제 끝이 보인다. 내일은 출발했던 오클랜드로 돌아가는 날이다.


언덕 위가 캠퍼밴 사이트 관리자가 살고 있는 집



11월 13일

슈퍼마켓에서 산 음식도 거의 떨어져간다. 마지막으로 있던 즉석 라면을 아침으로 먹었다. 봄베이로 향한다. 가는 길에 작은 기념지에서 멈춰 사진을 찍었다. 캠퍼밴은 이런 점이 좋다. 여행의 주인공이 내가 될 수 있는 점. 참, 도로 이야기를 잠깐 써 보자. 뉴질랜드 도로는 대부분 2차선이고 폭도 비교적 좁다. 그러나 통행량이 적은 탓인지 과속하는 차량이 많다. 가는 길에 커브가 심한 곳이 꽤 있는데도, 차들은 전혀 속도를 줄이지 않는다. 나는 되도록 속도를 준수하는지라, 대부분 나를 추월한다. 나도 그걸 잘 알기 때문에, 최대한 차를 도로 옆에 붙이고 운행한다.

중간에 주유를 하고 봄베이로 향했다. 오 클랜드 근처에 있는 작은 도시이다. 아담하지만 살기 좋다는 느낌이었다. 주차하고 시내를 구경했다. 공원에는 산뜻한 잔디밭과 멋진 나무들이 잔뜩 있었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면서, 행복의 기준이란 무엇일까 생각이 들었다. 한국은 확실히 살기 좋다. 편리함 측면에서. 뉴질랜드는 조금 불편하지만, 인간적으로 보인다. 내가 서울에서만 살아서 외국의 소도시에 대해 환상을 품는지도 모르겠다. 서점에 갔는데 이쁜 양장 책들이 많았다. 선물로 뭘 살까 했지만, 적당한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나중에 뉴질랜드에 살면 어떨까 하고 여행 내내 이야기했었다. 때문에 부동산을 발견하고 집 모양과 가격을 유심히 보았다. 근사한 집이 참으로 많았다.



봄베이에 있던 멋진 나무


다시 차를 출발해서 오클랜드에 도착했다. 맨 처음 식품을 샀던 푸드타운에 다시 가서 요거트 2개를 샀다. 차를 반납하러 마우이 지점에 갔다. 깨진 냄비는 아무 상관 없지만, 차 긁힌 것에 대해 직원이 물었다. 설명하기도 힘들고 해서 나는 언제 생긴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운전하다가 이상한 소리를 들은 것 같다고 말해줬다. 사실 걱정이 되서 보험도 최고 상태로 했기 때문에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오기 전에 생각없이 기름을 가득 채웠기 때문에  반 이상 남았다. 반납하려고 하니 아까웠다. 계약할 때 반납 시 연료값을 지급하는 옵션을 택했다면 돈을 좀 더 아낄 수 있었는데... 어쨌든 택시를 불러달라고 하고 기다렸다. 마우이 지점에서는 바구니에 사과가 담겨있고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 저번 출발할때도 사과 몇 개를 챙겼었다. 기다리는 동안 또 챙겼다.

마침내 택시 기사가 도착했는데 한국인이었다. 타국에서 동포를 만날 때의 기분이 어떤 것인지 실감했다. 그는 한국에 있을 적에 한 대기업에 다니다가 이민을 와서 택시 운전을 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보다 훨씬 삶이 풍요롭다고 했다. 무엇보다 뉴질랜드의 학자금 제도에 대한 칭찬이 대단했다. 대출한 학자금을 취업 후에 갚을 수 있고, 그 동안의 이자도 없다고 했다. 부러운 제도이다. 다음날 오전 9시에 비행기가 출발이라 새벽에 떠나야 한다. 다행히 한국 분이 픽업을 해주겠다고 했다.

호텔 근처에 있던 영화 간판


호텔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나왔다. 기사님이 추천한 음식점을 찾아 식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걷다가 클럽 같은 곳을 보았는데, 사람들이 제법 긴 줄로 서 있었다. 바람이 몹시 불어 날씨가 제법 추웠다. 그런데 부인은 반팔에 반바지 차림이었다. 게다가 찾은 음식점도 그리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외국에까지 가서 김치찌개를 먹고 싶은 기분은 아니라고 할까. 다시 호텔로 향했다. 카운터에 있는 직원에게 모닝콜을 부탁했다. 그런데 웬지 불안했다. 생각해보니 팁을 주지 않았는데 해줄까 싶었다. 팁을 주러 다시 가는 것도 모양새가 이상하고... 남은 음식으로 저녁을 때웠는데 불안한 마음에 잠이 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밤을 새는 게 나을 듯 싶었다. TV 프로그램도 재미가 없어서 지루했다.


11월 14일

예감대로 모닝콜은 없었다. 영어를 좀 더 잘했다면 항의라도 할 수 있을텐데.. 한국 기사분은 6시 전에 도착하셨다. 짐을 싣고 공항으로 향했다. 이른 시간이지만 주말이라 그럴까. 차가 몹시 막혀서 예정보다 훨씬 걸렸다. 택시 요금이 57$ 나왔는데 30$를 돌려주셨다. 사양했지만 굳이 그래주셨다. 다시 뉴질랜드로 놀러오라고 말씀해주셨다. 수속을 하러 공항에 들어갔다. 경험이란 참 중요한 것이다. 처음에는 한없이 힘들던 수속도 쉽게 마쳤다. 이제 한국으로 향한다.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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