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우리 형제의 첫번째 차는 아반떼 HD였다.. 지금 견적을 보니 2007년에 샀는데도 1800만원 가량 가까이 들었다. 사실 차의 옵션은 거의 없다. 시트조차 직물일 정도니. 대신 엘레강스 스페셜이라고 VDC에 에어백이 좀 많이 달린 걸 골랐다. 결혼 전에는 그 차 덕에 지금 내 님과 많은 데이트를 즐길 수 있었다. 결혼 후에는 집에 놓고 왔다. 다리가 불편하신 아버지도 계시고, 이제 동생이 쓸 차례가 아닌가 생각도 들었다. 지금은 금액을 어떻게 조달했는지 모르겠다. 아마 반반씩 한 것 같다. 동생 반 아버지 반...
그 이후로 7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 동안 내게 있었던 가장 큰 사건은 단연 아버지와의 이별일 것이다. 아마 평생 내게 아픔으로 남을 것 같다. 부모란 계실 적에는 모른다더니. 가시고나니 그 빈 자리를 메꿀 방법이 도저히 없다. 얼마 전에는 꿈을 깨고 나서 울었다. 꿈 속에서 아버지는 저 멀리 걸어가고 계셨다. 난 목청껏 외쳤다. "아버지 잘 가세요!"
그 이후 나는 자식을 기다려왔다. 나는 그 동안 죽음이 나와 관련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할머니도 돌아가시고 고모도 두 분이나 돌아가셨는데 말이다. 큰 아버지 두 분도 나이가 80이 넘으셨다. 그런데도 태평하게 생각했다. 십년 뒤에나 올 일이라고. 지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태평한 마음이 끝나고 불안하고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었다. 내 짝이 내게 너무나 큰 도움을 주었다. 그녀 덕에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느끼게 되었다. 나 또한 갑자기 갈 수 있음을. 내가 없는 세상에 그녀는 어떤 의지를 할 수 있을까. 아마 그건 자식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버지가 이혼 후 힘들게 살아가셨지만 두 아들을 키우기 위해 어떠한 수고도 피하지 않으셨음을 알고 있다. 보안경에 필름도 붙이고, 상가를 돌아다니면서 정보지에 광고 싣는 걸 권유하기도 하셨다. 다리를 심하게 다치신 일은 재활용품 수집이었다. 아버지는 자존심이 강하시고 부끄러움도 많으신 분이었다. 그러나 해내셨다. 나는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만 그걸 직접 말한 적은 없는 것 같다. 그 생각을 하면 아직도 눈물이 나온다.
이상한 얘기가 길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우리 부부의 결실이 만들어졌다. 출산 예정은 이번 달이다. 그녀는 여전히 바쁘다. 며칠 전에는 새벽 두 시에 퇴근하기도 했다. 만삭인 몸은 보기에도 안쓰럽다. 균형을 잡기 어려워 하고 걸음걸이도 변했다. 통증에 시달리고 잠도 깊이 자지 못한다. 임신 전에는 항상 내가 깨웠지만 이제는 반대가 되었다. 그래서 출산 전에 차를 사기로 마음먹었다.
많은 고민을 했다. 무슨 일을 하든 사실 돈이 제일 큰 문제이다. 오랫동안 든 주택청약저축을 해지했다. 5년을 넘게 들었지만 차를 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할부로 사는 건 우리 부부의 원칙에 어긋난다. 일시불로 살 수 있는 걸 알아보면서 i40가 눈에 띄었다. 상당히 좋은 차였다. 국내에서 인기가 없지만 말이다. 이유는 알만했다. 차의 크기와 가격이 비례하지 않는 것이다. 차는 소나타보다 작아 보이는데 가격은 그보다 비싸다. 그런데 그 차를 사버렸다. 사실 내 소심한 마음으로는 살 수 없었다. 그녀의 응원이 컸다.
그래도 새 차를 살 수 있는 금액은 없었다. 다행히 엔카에서 주행거리가 매우 짧은 차량을 보고 눈여겨 보고 있었다. 고작 1000km를 달렸다. 가격도 생각하기에는 적당했다. 가서 차량을 직접 보니 정말 마음에 들었다. 오는 길은 너무나 차가 막혀서 세 시간 가깝게 걸렸다. 그래도 운전하는 것이 즐거웠다. 이제 카시트를 달아야 한다. 곧 있을 출산과 혹시 모를 병원 방문에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 주말 심야에 간만에 데이트도 할 수 있었다. 또 앞으로 어떤 일이 있을까? 다가올 사건이 기대된다. 오늘은 지하 주차장이 꽉 차다 못해 이중 주차를 한 차들을 피해 빠져나오느냐 30분이 걸렸다. 더 재미있는 일들이 많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