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
회사에서 단체로 코타 키나발루를 가게 되었다. 간만에 해외 여행이라 몹시 기쁘고 들떴다. 마침내 그 날이 왔다. 근무 시간을 마치고 출발하는지라 5시에 모두 일을 마치고 인천 공항으로 출발했다. 각자 승용차에 몇 씩 나눠탔다. 퇴근 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지라 교통 체증이 우려되었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았다. 도착해서는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 또한 그렇지 않았다. 식사하고 검색 통과하고 하는 것들이 빠듯했다. 저녁으로는 모스 버거를 먹었는데, 이전에 꽤 좋은 느낌으로 남아있는 고려대 지하의 필레 버거 맛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비행기에 탑승했는데 몇 명이 오지 않았다. 조금 걱정되었지만 다행히 모두 출발 전에 탑승했다. 사정을 좀 들어보니 면세점에서 할인을 해준다고 했지만 결제하는 사람은 그렇게 해주지 않아서 실랑이를 하다가 포기하고 왔다고 한다. 연착이 되어서 1시간 지난 10시에나 출발할 수 있었다. 좁은 이코노미 석에서는 세상만사 잊고 자는게 최고인지라 그러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래도 얕은 잠으로 4시간은 잤다. 비몽사몽 간에도 기내식까지 챙겨놓았다.
이윽고 오전 3시(말레이 시간)에 코타 키나발루 공항에 도착했다. 수속하고 한국인 가이드가 안내하는 셔틀 버스를 탔다. 그리고 넥서스 호텔로 향했다. 운행 중에 가이드가 이런 저런 잡담을 해주었는데 느긋하고 재밌는 말투가 인상적이었다. 차창 밖으로 보는 코타 시는 한국의 여느 관광 도시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낡아 보이는 건물에 스타벅스, KFC 같은 온갖 프랜차이즈 상점이 좋은 곳을 차지하고 있다. 어느새 호텔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시설이 좋아서 기분이 괜히 좋았다. 시간은 어느새 4시 30분. 자기도 애매했지만 그래도 다음 날을 위해 자는 편이 좋을 것이다.
둘째날
여행의 진짜 첫 날이다. 원래는 휴식을 겸해 별다른 일정이 없었다. 허나 이왕 온 겸 시내 관광이 추진되었다. 셔틀 버스를 타고 스쳐 지나갔던 코타 시로 향한다. 가려면 버스를 예약해야 한다. 자리가 한정되어 있어, 잡지 못하면 택시를 타야 하는데 당연히 훨씬 비싸다. 다행히 자리가 있었고 타고 나서는 1시간 가량을 간다. 10시 30분에 탔는데 저녁 7시 30분에 데리러 온다고 한다. 도착한 시내는 몹시 혼잡했다. 영국식 로터리 체계가 사방에 보였다. 일단 점심이니 밥을 먹기로 했다.
일행 중에 매우 정보가 밝은 사람이 있다. 그 분 덕에 속칭 말레이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맛집을 찾아 향했다. 메뉴에서 골고루 주문을 했다. 일행 중에 영어를 하는 사람이 많아 편했다. 음식이 나왔는데 향이 강했지만 입맛에는 잘 맞았다. 매콤한 요리는 특히 더 그랬다. 고소한 야채 볶음에는 새우 맛이 난다. 밥을 먹는 도중에 갑자기 세찬 비가 내렸다. 우기라고 했다. 편의점에 들러 우산을 사고 예약한 마사지 가게로 향했다. 그러는 중에 스타벅스가 눈에 띄였다. 모두 차를 한 잔하기로 했다. 나는 좀 추웠던 지라 따뜻한 코코아를 시켰다. 일행 중에 환전을 해오지 않은 사람이 꽤 있었던지라 시내 환전소에도 들렀다. 듣자하니 환율이 여기가 더 좋다고 한다.
마사지 가게에 도착했다. 아로마 향이 입구부터 강했다. 자리로 안내받아서 1시간 가량 마사지를 받았다. 느긋한 기분이 들어 반쯤 잠이 들었다. 2시간 코스로 받는 사람도 있어서, 먼저 끝난 몇 사람과 근처를 돌아보기로 했다. 워터프론트라는 큰 쇼핑몰을 찾았다. 그런데 가게는 별로 없고 살 것도 눈에 띄지 않았지만 일몰을 바라보는 전망대는 훌륭했다. 전망대라고 해도 해변을 향한 울타리 정도였지만 바다로 보이는 일몰 광경이 너무나 훌륭했다. 대충 구경하고 다시 마사지 가게로 향했다. 모두 해안가의 맥주 가게로 향했다. 호주인이 경영한다는 곳이었다. 소고기 파이와 애플 타르트와 산 미그 맥주를 마시며 보는 노란 일몰은 대단히 아름다왔다. 그러면서도 가느다란 빗줄기가 추적추적 내렸다. 다 마시고 나서 편의점에 들러 간식을 샀다. 저녁에 호텔에서 술을 한잔할 예정이다. 나는 말레이시아 라면을 두 개 샀다.
저녁이어서 그런지 길은 몹시 붐볐다. 얼마간 기다리니 셔틀 버스가 약속된 장소에 왔다. 가는 길은 더 시간이 걸렸다. 호텔에 도착해서는 그곳에 있는 고급스러운 중국 음식점에 갔다. 맛있는 음식을 일행과 나눠 먹으며 즐거웠다. 그 후 로비에 모여서 맥주와 함께 보드 게임을 했다. 젝스라는 게임이 인상적이었다.
셋째날
오늘은 스노클링을 하러 가는 날이다. 일부는 체험 다이빙을 한다. 간단히 설명하면 스노클링은 그렇게 불리는 도구를 머리에 뒤집어 쓰고 물 밑을 보는 관광이다. 체험 다이빙은 잠수통을 매고 깊은 곳으로 들어가지만, 자격이 없는 일반인이 대상인 만큼 강사가 뒤따른다. 암튼 이것들을 하려면 다른 섬으로 가야했다. 정말 물이 맑지 않으면 밑으로 들어가도 볼 수 있는게 없으니 말이다.
미니버스를 타고 조금 가서는 대형 버스로 갈아탔다. 그리고 한참을 다시 갔다. 그리고 선착장에 도착했다. 거기는 이미 많은 관광객이 있었다. 주변에는 콜라나 과자를 파는 노점이 있고 한켵에는 화장실 세 칸이 있다. 앞에는 흙빛의 강이 흐르고 많은 배가 떠 있었다. 벌써부터 햇볕이 몹시 뜨겁다. 저 멀리는 구름이 많이 보였다. 오늘 비 올 확률이 70%라고 했던가. 30분쯤 기다려야 했다. 다른 버스가 도착하면 같이 출발한다나 뭐라나. 첫날 가이드가 그랬다. 여기는 기다리는 게 일과라고. 예전에는 몹시 성급하고 무엇에 쫓기던 나였지만, 세월의 힘인가 이제는 제법 침착해졌다. '코리안'이라는 외침이 들렸다. 인솔자 역의 회사 동료가 앞장서고 나머지가 뒤따랐다.
보트는 선원 두셋에 승객 열둘 가량이 탈 수 있었다. 잘못 탄 사람이 내리는 일이 있은 후 출발했다. 배는 몹시 빠르게 달린다. 그 속도감은 기분을 좋게 했다. 따가운 햇볕에 굉장한 바람이 그것을 식혀준다. 여행와서 들뜬 기분이 두배가 되었다. 어느새 하구를 빠져났가고 바다로 나갔다. 이제부터가 대단했다. 구름도 꽤 있고 바람도 조금은 세게 느껴졌다. 파도가 1미터 가량은 되는 것 같았다. 보트가 워낙 빠르다보니 파도를 타고 올라가다 잦아들면 선체가 수면에 쾅 떨어지는 것이 대략 5초마다 반복되었다.
처음은 좋았지만 그것도 한정없이 이어진다. 뒷편에 앉은 중년의 여인이 토악질을 한다. 능숙한 회화를 하는 어떤 한국 여성이 선원에게 항의했다. 그들은 속도를 좀 늦추는가 싶더니 어느새 원래대로 돌아가 있었다. 어쩌면 그 전보다 더 빨라진 것 같기도 하다. 내 짐작에 파도가 높아져 돌아가기라도 하는 때에는 그들에게 손해인 것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멀미 기운을 느끼지 않았다. 낯선 나라에서 너무나 아름다운 하늘과 바다를 보는 것만으로 너무나 만족한 기분이었다. 너무 많이는 아니더라도 1시간 쯤은 더 달려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는 새 지평선에 나무가 가득한 작은 섬이 보였다. 좀더 가까이 가자 전형적인 남국 풍의 판자집과 선착장이 보였다. 배를 대기 전에 엄청난 속도로 선회를 하면서 잔뜩 기울였다. 속이 뒤집힌 사람에게는 업친 데 덥친 격일 것이다. 내게는 신기한 경험이었지만. 그렇게 두어 바퀴를 서비스처럼 돌아보인 후에 선착장으로 향했다.
마침내 내린 섬은 그리 크지는 않았다. 허나 무척 아름다운 풍경과 해변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옥빛 투명한 바다에 햇빛이 스며들어 너무나 반짝거리는 것이 한없이 아름다웠다. 먼 바다 위에는 약간의 먹구름도 보였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하늘은 맑은 편이었고 굉장한 모양을 가진 구름들이 그 사이를 심심하지 않게 했다.
잠시 휴식 시간이 되었다. 수분과 당을 보충했다. 이제 각자의 놀이를 위해 헤쳐 모였다. 나 또한 몇 명의 일행과 함께 스노클링을 하기 위해 모였다. 구명 조끼와 스노클링 장비를 받았다. 조끼야 괜찮았지만 스노클링 장비는 위생이 나빠 보였다. 소금물로 매번 소독하니 괜찮겠지 하고 위안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또 배를 타고 나간단다. 알고보니 스노클링이란 바다 속을 구경하는 것인 만큼 물이 투명해야 하고 볼 것도 근사해야 했다. 또한 안전을 위해 해파리의 유무로 중요했다. 유속도 그렇고.
다른 배에 타서는 십여분 가량 달렸다. 어느 섬 어귀에 멈췄다. 선원 하나가 능숙한 솜씨로 물에 뛰어들더니 여기저기로 헤엄을 쳤다. 다시 배에 오르더니 몇 마디 말을 주고 받았다. 알고보니 해파리가 보인다고 했다. 배는 다시 출발했다. 섬 둘레를 어느 정도 가더니 다시 멈췄다. 아까 과정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적당한 장소라며 입수하라고 했다. 나는 물이 무섭고 헤엄도 못 해서 가장 나중에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모두 내린 후 사다리를 잡고 조심스레 물에 들어갔다. 생각보다 매우 깊었다. 그리고 구명 조끼를 단단히 여미지 않아서인지 자꾸 머리 위로 빠져 나오려 했다. 가랑이 사이로 고정한 밴드 덕에 그렇지는 안핬지만 시야가 가려져서 한결 불안했다. 내 수영법은 개헤엄이 고작인데 물살은 은근했다. 몇번 자맥질을 하다보니 물을 먹게 되고 몸이 돌았다. 몹시 불안해서 배에 붙은 작은 사다리를 잡고 해보기로 했다. 알고보니 걸쳐져 있는 것에 불과했지만 뭔가 잡을 것이 있다는 사실이 나를 안도하게 했다. 이제 스노클링을 시작할 때였다.
처음 본 물 밑은 몹시 이국적이었다. 각양각색의 산호가 물 밑에 가득했다. 작은 물고기가 유유히 헤엄쳐갔다. 드물게 원색의 산호가 보석처럼 박혀 있었다. 광경이 너무나 낯설고 신기해서 정신없이 이곳저곳 바라보았다. 수면 위로 뻗은 호흡기에 물이 들어오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차라리 숨을 참고 바라보았다. 무엇보다 나를 이끄는 것은 고요함이었다. 귀에 물이 차면서 생긴 완전한 적막 속에 외계와 같은 기묘한 풍경. 거기에 우주선처럼 나아가는 물고기들. 회사 동료 하나는 잠수 자격증을 갖고 매년 바다를 찾아 이것을 한다는데 그 이유를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정말로 강렬한 경험이었다. 그저 맛보기가 이 정도라니. 그는 물밑에서 대형 가오리가 헤엄치는 것도 보았다고 한다. 평소에 다큐멘터리를 좋아하기에 TV에서의 화면은 몹시 익숙했다. 하지만 수많은 간접 경험은 단 하나의 직접 경험을 이길 수 없었다. 이래서 행동하라는 것인가.
대략 30분이 흐르고 다시 배에 올랐다. 한 군데를 또 골라서 그곳에서 한다고 했다. 동료가 이번에는 좀더 배에서 떨어져 보라고 권유했다. 물살도 괜찮다며 말이다. 두려웠지만 따라보기로 했다. 그러나 내 헤엄 실력은 너무나 모자랐다. 스노클링을 하려면 고개를 물 속에 넣어야 하는데 자꾸 몸이 뒤집어지려고 했다. 이러니 스노클링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나의 어쩔 줄 하는 모습을 본 선원 하나가 도움을 주었다. 배에 달린 밧줄을 풀어서 내게 주었다. 한가닥 뿐이지만 대단한 도움이 되었다. 밧줄을 잡고 표류하니 안정적으로 바닷속 경치를 즐길 수 있었다. 정신없이 보다보니 금새 시간이 흘렀다. 어느새 다른 이들은 모두 배에 올랐다.
그런데 나는 좀처럼 헤엄을 칠 수 없었다. 허우적댈 수록 배와 멀어져가고 있었다. 꼭 잡고 있는 줄 만이 나를 표류하지 않도록 고정해줄 뿐이었다. 마침 곁으로 선원이 헤엄쳐지나가고 있었다. 열심히 도움을 외쳤더니 그가 알아보고 와줬다. 나를 잡아 끌더니 배 가까이로 데려가줬다. 그제서야 사다리를 잡고 오를 수 있었다. 다시 배가 출발했다. 본래는 한군데 더 들러야했지만 물살이 빨라져서 돌아간다고 했다. 마지막 스노클링으로 꽤 지쳤기 때문에 나는 그래도 좋았다.
코타 키나발루에 갔다 온지는 꽤 되었지만 너무 늦게야 이걸 써서 대충 마무리를 지어야 겠다. 넷째날에는 호텔이 있는 리조트의 풀장에서 놀았다. 수구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맛있는 스테이크와 감자 튀김도 먹고 맥주도 마셨다. 돌아오는 길은 피곤했지만 마음 속은 깨끗해진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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