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회사를 9년 가까이 다녔기에 여러 사람을 만났다. 그래서인지 많은 일이 있었다. 무엇보다 사람이 생각난다. 나는 늦게 합류했지만, 앞서 회사를 창업할 때 함께 한 이들.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에 대해 익명으로 써보고자 한다. 그런 거장들과 함께 일한 것으로도 사실 영광이다. 게다가 나의 장년 대부분을 장식한 추억이니까 ...
그 사람은 고기를 무척 좋아했다. 덩치도 매우 좋았다. 회사에는 항상 운동복 차림에 크로스백을 맸고 60인치에 달하는 4K 텔레비전을 모니터로 썼다. 그럼에도 아이러니하게도 글꼴 크기는 100 포인트가 넘었다. 조망이 전혀 안되는데도 코딩 솜씨는 그야말로 최고였다. 템플릿 라이브러리를 처음부터 혼자 짤 수 있었다. 믿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컴파일러 레벨까지 완전히 알고 있는 듯 했다. 가상 테이블을 직접 제어하는 부분도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블로그나 여타 외부 활동은 전혀 없었다. 아니... Microsoft에 컴파일러 버그 보고를 할 정도로 C++의 온갖 기능을 사용했다. 템플릿 라이브러리를 직접 만들게 된 계기가 STL 초창기에 없던 기능을 넣고자 함이라 들었다. 이건 두번째 버전이고 첫번째 버전은 현재 회사에서 볼 수 있었다. ATL과 MFC가 합쳐진 느낌이었다. 근데 그걸 만든 게 10년도 넘었다. 아마 죽을 때까지도 난 그 수준을 넘을 수 없을 것이다. 게임에 쓰이는 점자를 넣기 위해 사용 가능할 수준으로 학습한 적도 있다고 들었다. 게임의 퀘스트를 자동 생성하기 위해 자연어를 조합해서 문맥이 있는 그야말로 소설을 쓰는 기능이 기획된 적이 있었다. 담당한 프로그래머가 어떻게 구현할지 막막해하자 직접 프로토타입을 만들어주었다. 지식 수준이 정말 구루라고 부를 만 했다.
인간적인 약점이 있다고 들었다. 만나서 이야기하면 불편할 정도로 예의가 바른데, 메신저나 메일로는 공격적인 문장에 놀라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했다. 허나 이만한 업무 능력이라면 그 정도는 흠도 아니고 오히려 인간적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고기를 몹시 좋아해서 실리콘 장갑을 항상 가지고 다니던 것도 생각난다. 손으로 뜯어야 제 맛이라며... 일본 애니메이션도 전문가 수준으로 좋아했다. 지금은 어디로 가셨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만한 인물이라면 당장 구글에 간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