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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감상문

스컹크웍스

by ehei 2010. 6. 17.

'알파 센터리(Sid Meier's Alpha Centauri)'는 내가 가장 재미있게 했던 게임이다. '문명'과 같은 형식이지만, 상상력을 한껏 자극하는 외계 - 알파 센터리의 한 행성에서 진행된다. 기술을 개발하다 보면 '스컹크웍스'가 있다. 이를 얻으면 최초 생산에 드는 추가 비용이 없어진다. 설명은 시제품 비용 무료. 이름이 독특해서 머리 속에 남아 있었는데, 이제서야 그 유래를 알았다.

 

그들은 항공기, 스텔스 분야에서 놀라운 성과를 이룩한 록히드 마틴 산하의 독립 개발팀이다. 스튜디오 개념이라고 할까. 그들의 작품은 미국의 항공 전력을 타국과 몇십년 차이로 앞서게 만들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는가? 스스로 일하게 하고, 원활한 대화가 이뤄지도록 갖은 방법을 썼다. 비용과 시간 절감을 중요히 생각하고, 적절히 타협했다. 외부의 간섭을 최대한 막고, 정직하게 행동했다. 인력은 철저히 능력 위주였다(직원 중에 마약 중독자, 성도착자도 있었다). 중요한 건 결국 지도자다. 그가 어떤 생각을 품고, 구성원들에게 얼마나 납득시키느냐가 중요하다. 그리고 지도자 자신이 열정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그들 모두가 지도자처럼 일했다. 최선을 다하면서도 실패도 기꺼이 인정했다. 자신에게 솔직했다.

 

이런 조직이 성과를 올리지 못한다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이다. 전자 오락 분야에 종사하는 내게도 많은 영감과 함께 질시의 한숨을 쉬도록 했다. 위대한 조직만이 위대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 수천년 간 서 있는 피라미드의 건설자를 떠올리기만 해도 외경심이 품어진다. 마찬가지로 이 모든 걸 시작한 켈리 존슨을 우러러 본다. 그는 최고의 조직을 창조하고 토대를 닦았다.

 

최근 들어 내가 프로젝트 관리자가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을 하는 때가 종종 있다. 우습게도 아직 나는 팀장 대행을 해본 경험이 전부다. 어쨌든 어찌해야 할까. 일단 켈리의 십사조항 같은 최소한의 기본 규칙을 세운다. 이 규칙을 받아들일 수 없는 자는 팀에 있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팀원들이 이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도록 지도한다. 서로 간의 대화를 권장하고 그럴 기회를 만든다(돌이 날아가는 거리까지만 책상을 놓은 것처럼). 품질을 중시하되 지나친 완벽이 적임을 주지시킨다.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외부 간섭을 최대한 막고, 인간성보다 업무 능력이 중요함을 잊지 않는다. 악당도 교화시킬 수 있다. 다만 지도자가 맡아야할 몫이다. 스컹크웍스에는 이런 사람도 있었다. 어떠했냐면 책상에 앉아 있다가 누군가 뒤에 서 있으면 가차없이 그 자의 넥타이를 잘라버렸다. 켈리 존슨은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중요한 점은 성과를 올릴 수 있는 사람으로 채운다는 것이다.

 

기계적인 조직은 점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시간과 비용의 압박은 가중되면서도 요구 사항은 더욱 더 변화무쌍해졌다. 상향식으로는 절대 바꿀 수 없다.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에 조직원들이 알아서 변하기를 기대해서는 안된다. 하향식. 뛰어난 지도자가 조직을 바꾼다. 정말 사자가 이끄는 양떼가 양이 이끄는 사자떼를 물리칠 수 있다. 이건희가 없는 삼성을 생각해보자. 그리고 스티브 잡스가 없는 애플을 생각해보자. 어느 쪽이 빈 자리가 더 클까. 내게도 기회가 올지 모르겠다. 허나 행운이 문을 두드렸을 때 놓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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