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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감상문

평행 우주

by ehei 2010. 9. 27.

이 책은 꽤 두꺼운 책이다. 책장에 오랫동안 꽂혀있었음에도 손에 잡히지 않은 이유가 그랬다. 허나 읽기 시작하니 눈깜짝할 사이에 보았다. 아주 재밌게. 우주에 관한 인간의 해석은 어떻게 발전했는가. 개인적으로 물리학에 관심이 있는지라 많은 용어들이 친숙해서 더 재미있었다.

 

집대성이라고 할까. 이런 저런 책에서 서술되는 우주에 대한 각종 이론들이 백과사전처럼 담겨있다. 그래서인지 정말 두껍다. 번역이 정말 잘된 책이다. 전혀 딱딱하지 않고 막힘없이 읽혀진다. 내 머리 속의 지식도 팽창하는 기분을 느꼈다. 사진이나 그림이 없음은 좀 아쉬운 일이다. 이미 언급했지만 작가의 멋진 글과 뛰어난 번역 덕분에, 머리 속에 절로 그림이 그려진다.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 흥미롭다. 다른 책에서 보지 못했던 우주의 종말을 다루기 때문이다. 우주의 최후는 어떠할까. 에너지 평형 상태가 된 차가운 우주. 그 파국에서 인류가 살아남는 방법은 무엇인가. 이쯤에서는 과학 소설 느낌이다. 그렇지만 실제 이론에 기반한 내용이다. 우리가 아는 과학 이론들이 대부분 과학자의 상상에서 나왔다. 배움도 중요하지만, 상상의 힘을 느꼈다. 머리 속에 우주를 창조할 수 있다. 빅뱅, 인플레이션 이론, 블랙홀...

 

다 읽고 나서 우주란 존재가 바라보는 나를 생각했다. 나의 죽음도 떠올려봤다. 죽음이란 가늠할 수 없는 현상을 생각하면 아찔하지만, 우주에 비하면 대수롭지 않은 일일 뿐이다. 나의 유물론적 사고로 얻은 결론은 영혼이란 없다. 오로지 물질에 의한 윤회 뿐이라 생각한다. 학자들에 의하면 우주는 무에서 창조되었다. 대부분의 물질은 반물질이 반응하여 사라졌으나, 어떤 이유로 희소한 물질이 남았다고 한다. 우주는 대부분이 비어있지 않은가. 별이 먼지가 뭉쳐 생긴 것처럼 인간도 그러하다고 믿는다. 먼지같은 존재. 우주 쪽에서 보자면 별도 사소하다. 하물며 인간쯤은... 거대한 우주를 생각하며 머리가 꽉찬 것처럼 압도당한다. 그러면서도 의식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신비로운 일인지 생각한다. 덕분에 거대한 우주를 느끼고 작은 나를 실감한다. 양자 이론이 이야기하는대로 관측자가 있음에 사건이 확정된다. 내가 존재하므로 세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과학은 현상을 알게 해준다. 최소한 그릇된 허상에 흔들리지 않도록 한다. 내 스스로 느끼는 특징은 현상에 대해 비판적이란 점이다. 사물의 반대편을 보려는 습성이 있다. 이런 것은 과학과 역사에 대한 책을 읽으며 생겼다. 책을 보면서 얼마나 많이 놀랐는가. 내가 알던 상식이 깨뜨려질 때마다 말이다. 이런 점이 모든 상황에 대해 유용하지는 않다. 허나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런대로 좋은 점이라 생각한다. 과학도 그래서 좋아한다. 생각하지 않는 과학이란 없으니까. 멋진 이론들이 얼마나 많이 영감으로 탄생하는가. 우주의 모든 비밀은 머리 속에 있는 것이다. 그걸 끄집어 내기만 하면 된다. 그러려면 생각해야 한다. 순응하지 말고 말이다.

 

끝으로 내가 어찌해서 과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쓰고 싶다. 정규 교육 속의 과학은 내게 교과서 만이 전부라고 느끼게 했다. 시험에 앞서 외워야 했던 따분한 설명들. 과학 소설은 재밌지만 환상으로만 간주했다. 허나 어떤 게임 덕에 바뀌었다. 이전 독후감에도 언급했던 '알파 센타우리(Sid Meier's Alpha Centauri)'란 게임 덕이다. 내용인즉 이렇다. 지구 멸망 즈음에 탈출한 인류는 신천지 알파 센타우리에 도착한다. 거기서 이데올로기로 나눠진 당파와 경쟁하며 진균류가 번성하는 이질적 환경에 처한다. 살아남기 위해 기술을 발전시킨다. 배경이 미래여서 최신 과학 이론들이 잔뜩 등장한다. 단극 자석, 초끈 이론, 대통일 이론... 멋진 단어들 아닌가? 결말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그래서 이 게임에 대한 인상은 아직까지도 강렬하다. 그리고 우연히 도서관에서 이런 용어들에 대한 책을 발견했다. 내 관심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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