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감상문

로마제국 최후의 100년

by ehei 2010. 10. 6.

로마 제국에 대한 책은 참 많다. 내가 이런 종류로 읽은 걸 대강 헤아려도 수십권쯤 되는 것 같다. 로마인 이야기, 로마제국 쇠망사 외에 제목은 까먹은 시저, 동로마, 한니발에 대한 이야기들. 왜 이리 로마 대한 책이 많을까? 강하고 화려한 제국이 없는 것도 아니다. 페르시아, 몽고, 무굴, 청, 잉카, 마야, 스키타이, 이집트... 그럼에도 로마를 첫 손가락에 꼽는 것은 서구 문명이 자본주의를 주도하기 때문으로 본다. 로마 제국에 대한 자료도 참으로 많다. 손에 잡힐 정도로 실감나게 그려진다고 해야할까. 헐리우드 또한 그 강대했던 제국을 소재로 많은 영화를 만들어왔다. 뭔가 머리 속에 그려지니 웬지 더 생생하다.

 

그간 궁금했던 건 로마 멸망은 어떤 식으로 규정되는가였다. 정복당했었나? 이 책을 읽고 알게 되었다. 공식적 멸망 훨씬 전부터 제국은 껍데기만 있었다. 멸망 직전에 로마에 입성한 자는 허울 뿐인 황제 자리에 연연하지 않았다. 그래서 황제의 의관을 콘스탄티노플에 보내버렸다. 새 정복자는 로마를 계승할 뜻이 없음을 밝혔고, 그것이 멸망으로 공식화되었다. 책을 읽으며 제국주의와 정치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제국주의부터 시작하자. 로마는 정복과 확장을 거듭했고 안정을 위해 많은 피를 흘렸다. 팽창한 제국은 덩치를 지켜야했다. 동서로 분할된 제국이 그런 산물이었다. 왜 진작 몰랐을까? 조금만 추리하면 알 수 있는 일이었는데. 통신 수단의 미비로 인한 의사 결정 속도 저하는 제국을 분열시켰다. 페르시아의 위협은 그 필요성을 증대시켰다. 그 선택이 아니었다면 멸망 시점이 더욱 빨랐을 터이다. 제국주의가 그다지 좋은 느낌의 단어는 아니지만, 농경 사회에서 성장하기 위해 필수 수단으로 생각된다. 토지는 2차원으로 펼쳐져있으니, 영토 확장 외에는 방법이 없다. 생산력이야 뻔하니 많을수록 좋다. 그런데 저자는 로마 제국의 멸망 원인으로 제국주의를 꼽는다. 제국주의를 택했기 때문에 로마가 멸망했다고 한다. 나는 그런 결론을 인정할 수 없다. 그의 연구를 존경하지만, 결론을 내린 방식이 납득되지 않기 때문이다. 로마 제국을 뒷받침한 수십만의 병력. 그걸 유지할 수입이 당시에 농업 외에 있었을까. 제국주의는 필수적인 선택이었다. 아니면 다른 제국의 공격에 게르만 족이나 갈리아 족이 당했던 것처럼 오랜기간 학살당하거나 정체성을 잃고 흡수되었을 터이다. 그걸로 흥한 국가가 그걸로 망하는 것도 당연하다. 유교를 바탕으로 아시아에서 중국 다음의 문화를 꽃피운 조선을 생각해보자. 그러나 유교의 경직성으로 시대에 뒤쳐져 망해버렸다. 장점을 뒤집으면 단점이 된다. 그래서 내가 로마라면 좀 억울할 것 같다. 죽음의 원인을 탄생으로 규정짓는 듯해서 말이다.

 

이제 정치를 언급해보자. 로마 관료들의 온갖 부패 행태와 잦은 사면을 접하며 탄식했다.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았음을 새삼 느끼며 말이다. 어떤 정치든 기득권의 요구를 충족시켜야 하는 건 당연할 터이다. 어쩔 수 없다. 권력은 추종자로 인해 이뤄지며, 그들이 등을 돌리는 순간 사라진다. 소비자를 만족시켜줘야 하는 것처럼. 제국의 재정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중에도 로마 지주들을 위해 그토록 잦은 면세를 베풀었던 구절이 생각난다. 지금은 안 그런가? 기술이 발전했을 뿐 행태는 그대로인 듯 싶다. 언론이란 견제 도구가 있다지만, 양극화는 언론이 서커스 역할에 머물게 한다. 소득이 낮았던 6~70년대보다 정치 참여는 줄었으니 웬일인가. 하긴 밥 한끼를 걱정하는 사람이 그런 것이 와닿을리 없다. 차라리 웃긴 코미디 프로그램이 훨씬 도움이 될 터. 로마는 폭동을 막기 위해 무산 계급에게 공짜로 빵을 줬다. 이렇게 대중에게 빵과 서커스를 던져준다. 그런 현실이 가증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생각으로 현실이 바뀌지는 않는다. 권력이 필요하다. 이를 획득하려면 재산, 지위, 재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용기도 추가하자. 다행히 현대 사회에는 무산 계급도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지식이다. 인터넷으로 지식을 값싸고 풍부하게 획득할 수 있다. 지식은 없던 재능도 생기게 하거나 더욱 빛나게 한다.

 

서로마의 멸망과 동로마의 분투를 보며, 톨킨이 이 즈음 이야기에 영감을 얻어 '반지의 제왕'을 쓰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서로마는 북왕국 아르노르, 동로마는 남왕국 곤도르, 게르만족은 하라드 및 던랜드 등의 변경 민족으로 생각해보면 어떨까? 그렇게 대입해서 읽으니 웬지 더 흥미진진했다. 만약 로마 연합군의 북아프리카 수복이 실현되었다면, 제국의 생존은 좀더 길었을 터이다. 모르도르로 간주되는 훈족의 공습은 그걸 좌절시켰지만. 그런데 로한은 어디에 대입할 지 잘 모르겠다. 준마의 산지로 유명했던 에스파냐 속주로 생각할까? 어쨌든 읽는 와중에 틈틈히 소설과의 공통점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700 페이지가 넘는데도, 흡입력있는 소재에 멋진 글솜씨까지 곁들여져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나름의 '반지의 제왕' 대입도 그걸 부추겼다. 드라마를 본 것 같다. 읽는 내내 비장한 음악을 듣는 듯 했다. 제국의 멸망. 단어만 읊어도 뭔가 뭉클하다. 만족에 둘러쌓인 문명의 보루. 한민족 또한 중화 제국에게 오랑캐였다는 사실을 안 후부터 이런 말도 안되는 생각과는 작별했지만 그래도 뭔가 느낌이 다르다. 영화를 너무 많이 봤나. 아니면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 이야기에 너무 빠졌었나.




' > 감상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이지 않는 국경선  (0) 2010.10.14
조엘 온 소프트웨어를 넘어서  (0) 2010.10.07
원점에 서다  (0) 2010.10.04
르몽드 세계사  (0) 2010.09.28
평행 우주  (0) 2010.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