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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감상문

로지코믹스

by ehei 2011. 4. 5.

나는 수학을 동경한다. 자연을 표현하는 암호. 그러나 알고보면 완벽하기 그지없는 아름다움이 들어있다. 편입 당시에만 해도 수학의 옷자락 한 켠의 향기로움을 맡는 데까지 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프로그래머 생활을 한 지 4년이 되고 공부는 조금씩 멀어지고, 수학은 동경의 대상으로까지 멀어져버렸다. 그러나 아직도 서점에 가면 공부하기 쉬운 수학책이 없을까 찾아보곤 한다. 그러는 와중에 이 책을 만났다. 와우... 내가 좋아하는 만화 형식에 수리 논리학이라니!

책을 집에 가져와서 그날로 밤을 새워서 다 읽고 말았다. 읽고 나서 느꼈다. 나의 신앙이 더 강해졌음을. 러셀의 성취와 노력을 성인처럼 생각하고 있음을. 무엇보다 무언가 이룬다는 것은 위험을 감수해야함을 느꼈다. 그 정도로 집중해야하는 것이다... 소년 러셀이 조부모의 집에서 양육되면서 얻는 그의 진리 탐구 정신. 그게 없었다면 그의 생이 순간 끝장날 수도 있었다. 나 자신을 잃는 것... 무서운 느낌이 아닐까? 그러면서도 우리는 흔히 이야기한다.  천재에게 무엇이 빠져있는 것 같다고. 그럴 수 밖에 없다. 그의 재능이 유난히 두드러진 곳이 있기 때문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만큼, 모든 걸 다 챙길 수는 없다. 이사를 다니다보면 빼놓는 짐이 생기기 마련이듯.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기대가 접히고 실망감까지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 담긴 그의 이야기가 전부 사실은 아니기 때문이다. 중간에 한 컷으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법적 소송 방지를 위해 가감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의 상상이 아주 많이 담겨있다. 재미를 위해 가감한 차원을 넘어섰다고 볼 수도 있다. 일례로 화이트헤드 교수 부인과의 플라토닉 러브는 출처를 알고 싶었지만 찾지 못했다. 사마천도 다 출처를 밝힌 건 아니지만... 그냥 러셀에 대한 논픽션 만화라는 편이 좋겠다. 그게 아니라면, 러셀이란 개성을 가진 주인공이 등장하는 본격 논리학에 발 담그는 만화? 게다가 작가 자신들이 논리학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도 중요한 대목으로 다뤄진다. 그런데다가 책의 결말이 별다른 내용없이, 그저 독자가 판단하라는 식으로 막을 내리니 아쉬움이 적지 않다. 게다가 연극 놀음이라니... 차라리 러셀에 대한 전기를 읽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도 든다. 자유연애를 신봉하고, 모든 것을 잊도록 학문을 사랑했으며, 자신의 광기를 두려워한 사내라...! 매력적이지 않은가. 

 

참, 작가들은 논리학자들의 지나친 이성에 대한 믿음에 대해 꼬집는 구석은 나의 기분을 조금 상하게 했다. 그들의 추리로 얻어낸 결론에 대한 집착. 그로 인한 실패 등을 몇 건 끄집어내서 제 3자를 칭해서 독자의 의견을 묻는다. 그러나 내 생각에 이건 의견을 물을 성질이 아니다. 논리학은 죄가 없다. 학자들도 죄가 없다. 성공하고 실패했던 많은 이들이 그렇듯 자신의 신념을 믿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행하지 않는 것보다 쉬운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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