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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감상문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by ehei 2012. 10. 14.


영화를 보고 나서 하루 빨리 책을 읽고자 마음 먹었는데, 꽤 많은 날이 지나고서야 이뤘다. 영화의 시각적 측면이나 정적이면서도 이야기를 긴장감 있게 끌고 나가는 것에 무척 감명받았다. 매우 긴 영화의 뒷 이야기를 끈질기게 읽은 이유이기도 했다. 뒷 이야기 중에 감독의 완벽주의 덕에 작가까지 덩달아 고생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오호, 그 정도로 책을 완벽하게 다듬었단 말인가. 게다가 영화 만으로는 부족했다. 어째서 그런 결말에 이르렀는지 도대체 알 수 없었다. HAL과의 대결이 끝난 후에 영화는 놀랍게 비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꼭 책을 읽기로 했다. 하지만 다 읽고 나서 변한 건 없다. 여전히 모른다. 하긴 아서 클라크란 작가가 친절한 설명과 주석으로 유명한 건 아니니까. 영화와 사실상 같은 줄거리를 갖고 있다. 모르긴 몰라도 나처럼 생각한 사람이 꽤 많을 것 같다. 하긴 이 작가가 쓴 '유년기의 끝'도 '라마와의 랑데뷰'도 불가사의로 가득 차 있다. 외계인을 이해할 수 있다는 태도가 더 불가사의하겠지만.


태초에 인류가 원숭이였던 시절. 외계 유물이 나타나 그들의 두뇌를 자극한다. 도구를 사용하도록. 진화한 인류는 마침내 달 기지를 짓는다. 자기장 탐사 중에 지하에 묻혀있는 외계 유물이 드러난다. 이 유물은 태양계 행성의 한 위성을 향해 전파를 발사한다. 인류는 이에 탐사선을 보낸다. 우주선은 HAL이라 불리는 인공지능이 총괄하는데 임무 목적은 비밀 엄수를 위해 그와 동면 중인 승무원만 알고 있다. HAL은 논리 오류를 일으켜 한 명을 제외하고 모든 승무원을 죽인다. 생존한 한 명은 인공지능을 구성하는 부품에 접근해서 의식을 이루는 것들을 뽑아 버리고 그를 침묵시킨다. 목적지에 도착하고 거대한 외계 유물을 발견한다. 컴퓨터도 없어 동면도 할 수 없고 후속 탐사선이 오기에는 시간이 너무나 걸린다. 죽음을 기다리는 대신 그는 유물에 접근한다. 온갖 의식의 서커스를 경험한 그는 아기가 되어 지구로 향한다

책은 지루한 편이다. 사실 영화도 묘한 신비로움을 빼고는 그렇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 제작 시기에 비해 지금 봐도 세련된 묘사와 이야기 전개는 일품이다. 그러니까 차라리 영화를 보는 편이 현명할 듯 싶다. 영화와 똑같은 내용도 내 실망의 이유 중 하나다. 에반게리온의 마지막처럼 엉뚱하게 치닫는 결말은 신기하지만, 지금 와서는 그렇지않다. 이 작가의 비슷한 책을 많이 읽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애니메이션 중에는 황당할 만큼 치닫는 것들이 꽤 많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렌라간'의 비약적 전개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될 정도다.

인상적인 건 선내 생활이 상당히 심심해보인다는 점이다. HAL이 미치지만 않았다면 수 개월이 걸릴 행성간 여행 중에 할 일은 별로 없어보였다. 위급 상황에 대비할 승무원은 그렇다치고, 일반 승객들은? 정말 동면 기술이 개발되지 않는다면 끝없는 지루함에 폭발해버릴 터이다. 여지껏 많은 오락 거리가 있지만, 멀티미디어인 게임이야말로 해결책이 아닐까.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래주거나, 관심을 쏟을 애완 동물을 키우거나 하는 게임을 할 수 있다면 어떨까. 청량음료로서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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