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픽사의 팬이다. 여지껏 그들이 내놓은 영화는 빠짐없이 봐왔다. 카 2를 제외하고는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시스템만 생각하던 내게 스토리 텔링의 중요성을 일깨워줬다. 이야기야말로 공감할 수 있는 매개체인 것은. 이야기가 없는 매체야말로 사막처럼 외롭고 쓸쓸할 수 있음을 말이다. 그렇기에 이번에 개봉한 픽사의 영화 또한 내게 필수 관람이었다.
영화의 초반은 식상하게 흐른다. 왕국에 왈가닥 공주가 있고 그녀는 반항적이다. 부모는 그녀도 모르게 결혼을 준비하고, 그 사실을 안 그녀는 몹시 화를 낸다. 결혼을 피할 방법을 찾던 중 마녀에게 이르게 된다. 이제부터 흥미로워진다. 마녀는 결혼을 피할 묘약으로 케이크를 만들어주고, 그걸 먹은 어머니는 곰으로 변해버린다. 왕은 곰에게 다리 하나를 잃어서 어떤 곰이든 원수처럼 여기는 중이었다. 어머니는 표적이 되어 쫓긴다. 마녀는 사라지고 대신 수수께끼를 남긴다. 그걸 풀지 못하면 이틀째 동이 트는 날 어머니는 영영 곰이 되어버린다. 메리다는 계속 엄마 탓을 한다. 그러나 마침내 자신의 탓으로 어머니가 짐승이 된 현실을 인식한다. 그뿐 아니라 결혼을 거부함으로써 왕국을 분열시켜버렸다. 그녀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다. 그녀가 거부하는 선택을 하지 않으면서도 합리적인 타협점을 찾는다. 허나 곰 냄새를 맡은 왕은 어머니를 사냥하기 위해 쫓는다. 공주는 마법을 풀어내지만 이미 이틀째 해가 뜨고 어머니는 여전히 곰인 채이다. 그녀는 스스로를 자책한다. 잠시 후 다행히 어머니는 사람으로 돌아왔다. 어머니 또한 변했다. 스스로를 속박하던 모습을 버리고 자유롭고 명랑한 어머니가 되었다.
어머니가 곰의 저주가 풀리지 않고 있을 때 흐르는 눈물을 느꼈다. 하염없이 흘렀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살아계실 적 불효했던 기억과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다는 생각. 픽사가 모두 해피 엔딩으로 결말짓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다. 가족에게 느끼는 애정. 행복한 가정이란 소중하다. 이는 오로지 자신의 노력 만으로 가능하다. 아버지는 홀로 우리 형제를 키우느냐 갖은 고생을 하셨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를 모시기 원했고 내 부인도 선뜻 동의해줬다. 그녀에게 배운 사랑을 나누고 싶었다. 오랜 설득 끝에 함께 살기로 했지만 예상할 수 없는 일이 생겼다. 인생인 예측 불가능한 사건의 연속이란 말처럼. 한동안 절망했지만 이제는 그럭저럭 수습한 듯 싶다. 자신의 행복은 스스로 찾아야한다고 했었지. 그럴지도. 최소한 내 가정의 울타리에는 행복을 알알이 맺히게 하고싶다. 나를 위해서 말이다.
자막으로 상영하는 인근 영화관을 찾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더빙판을 보았다. 그러나 예상보다 훨씬 좋았다. 하단에 나오는 자막을 보느냐 화면을 놓치는 일도 없었고, 개그맨들이 나와서 유행어를 쏟아내지 않아서 좋았다. '써니'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강소라 씨의 목소리 연기는 매우 뛰어났다. 극장에는 아이들이 무척 많았다. 옆자리 아이는 엄마 무릎 위에 앉아서 볼 정도로 어렸다. 아이들이 소리지르고 뛰어다니고 그러겠지하고 지레짐작했지만 틀렸다. 곰이 으르렁대는 것이 무서워서일까. 애들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가끔 세 마리 인형같은 새끼곰이 분위기를 띄웠지만 처음에 함성을 지르는 곰들에게 기가 눌렸을까. 어쨌든 좋은 영화 덕택에 일요일 오전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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