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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감상문

소울

by ehei 2021. 4. 17.

내 마음은 계산을 잘 할 줄 모른다. 나는 의견을 세련된 표현으로 하지 못한다. 그것은 직설적인 표현이 입에서 바로 나간다는 걸 의미하고 어떤 이들과 충돌한다는 의미가 된다. 많은 사람들과 충돌했는데, 팀장도 있고 사장도 있고 동료도 있었다. 20대 후반에 나비야라고 이제는 없어진 회사에 다닌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신작 게임의 기획을 맡아 꽤 의욕적으로 일했다. 나는 게임의 모든 부분을 맡았다. 그리고 일종의 배수진을 치고 있었다. 여기서 할 때까지 최선을 다해보고 안되면 프로그래머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기로 말이다. 이것은 아트에서 기획으로 전직한 것보다 더 난폭한 시도였다. 당시 나는 할 수 있겠지 생각만 할 뿐 어떻게 시작해야할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나는 게임이 여성향인 만큼 기획 만큼은 여성이 리드해야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래서 팀장이 퇴사했을 때 대리는 했을지언정 그 자리를 맡지 않았다. 새로운 팀장이 게임을 완전히 엎으려고 했을 때 나는 그 결정을 후회했다. 충돌이 계속되는 와중에 사장은 묘한 설문지를 돌렸다. 기억나는 항목은 한 개 밖에 없다. 그러나 결정적인 질문이었다. 바로 회사에서 당신이 얻은 것이 뭐였냐는 것이었다. 나는 웃긴 생각을 했다. 내가 여기에 인생을 걸만한지 시험해보고 싶었다. 도발적인 답을 쓰면 사장이 어떻게 반응할지 말이다. 그래서 나는 배운 게 없다라고 썼다. 얼마 후 나는 사장과 면담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내 답에 대해 여전히 그러한지 확인했다. 나는 그러하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권고사직되었다. 그리고 나는 미련없이 프로그래머 공부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영화 소감에 이런 개인사를 덧붙인 건 나도 나 만의 전당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조 가드너는 갑작스럽게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다. 그가 꿈꾸던 재즈 연주를 위해 삶에 대해 집착을 보이고 마침내 방법을 찾아낸다. 허나 극도의 허무주의 영혼인 22호가 그의 몸을 차지해버렸다. 대신 그는 고양이의 육체를 가졌다. 그들은 합심해서 저녁 재즈를 참석하려고 발버둥친다. 짧은 여정 동안 22호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아름다움이고 놀라움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거리의 연주, 환기구의 바람, 하늘에서 떨어지는 꽃잎 그리고 그냥 걷기... 허나 사망자 수를 세는 전능자에 의해 잡혀버린다. 픽사 영화 답게 근사한 해피 엔딩이니 안심하고 봐도 된다.

나 만의 전당을 좀더 생각해본다. 내가 임종을 기다리거나 갑작스럽게 찾아올 죽음의 문턱에서 만날 아주 긴 찰나의 순간에 무엇을 보게 될까 말이다. 위의 일화도 크게 전당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부끄럽고 감추고 후회되는 기억... 20대 어느날 회사에 런닝만 입고 간 적이 있었다. 나름 몸매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출근 길의 내 모습을 보고 경악했지만... 그러나 그 시도는 다시 이뤄지지 않았다. 회사에서 두 여사우가 나의 배가 나왔다며 놀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기쁘고 행복하고 되새기고 싶은 기억도 많다. 첫 아이의 탯줄을 끊었을 때, 청혼하는 시간, 집에서 햇볕을 받으며 화분을 가꾸는 시간...

인생의 끝에 과연 위대한 너머가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허나 삶이란 것이 어떠한 추구 만이 정답이 아니란 사실은 무수한 가르침으로 전해왔다. 조 가드너처럼 여정은 어느 순간 끝날지 알 수 없다. 절정을 눈 앞에 둔 순간의 종말이 그를 발버둥치게 하고 결과적으로 재기하게 했지만, 결말에는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떤 성취가 종착지가 아닌 것이다. 정말 중요한 건 그 과정에 있는 것이다. 아버지의 이끌림에 만난 재즈 연주, 레스토랑에서의 한가한 식사, 따뜻한 날의 자전거 하이킹까지... 어떤 가치가 남에게 인정받는 것이 전부가 아닌, 자아를 위한 길이야말로 성취에 무관하게 아름답고 내면을 위한다. 그걸 위해 무얼 할 수 있을까? 뜻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정신의 휴식이다. 그렇다. 올곧이 나를 위한, 누구를 의식하지 않는 삶의 자세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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