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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감상문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

by ehei 2010. 4. 12.

유머감각이 있는 컴퓨터를 만나면 어떤 기분일까. 분명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던 '마이크'를 만나기 위해 다시 책을 손에 잡았다. 물리치기에는 불가능해보이는 상대가 있다. 레이저총에서 시작해서 수소폭탄을 가득 싣은 우주선이 있는 지구. 반대편에는 총도 몇 자루 없고, 오로지 곡물 수송용 사출기만 갖고 있는 달. 이렇듯 달 독립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에 불과해 보인다. 그러나 달에는 너무나 매력적인 혁명 지도자 역을 수행하는 컴퓨터가 있다.

 

달의 통제 컴퓨터인 마이크는 어느날 의식을 갖게 된다. 화자가 추측하기에는 무한에 가까운 저장 용량과 달 전역에 걸친 감각 센서로 인한 것 같다고 한다. 하긴 인간도 단순한 전기 신호를 전달하는 뇌세포가 수없이 모여 의식을 이루지 않는가. 달세계의 순진한 독립 분자였던 교수와 미녀 그리고 화자 역을 맡은 컴퓨터 수리공이 수령 마이크의 지시에 따라 달 독립을 위해 나선다. 책의 묘사는 참으로 생생한다. 정말 이런 컴퓨터가 있다면, 역사상 어떠한 혁명도 성공할 것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 반대로 그런 존재가 없을 경우에 혁명이 얼마나 실패하기 쉬운지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혁명은 민중을 위한 것일까. 주인공들 중에 그런 자는 순진한 와이오밍 뿐. 게다가 가장 큰 적은 민중이 될 수 있음도 보여준다. 달 총독부 전복 후 생긴 어용 의회와 그런 움직임을 교란시키는 반 교수를 보며 민주주의가 무엇인지까지 고민하게 한다. 정치의 본질이 무엇인지도 함께.

 

얼마 전에 면접에서 혁명을 포기하고 사회에 이바지하고 싶다던 지원자가 합격 판정을 받고도, 윗선의 지시로 취소가 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아마 그들은 혁명이 어떠한 것인지 몰랐나 보다. 수많은 운명이 시험대에 오르는 진정한 예술임을. 극한의 효율을 발휘해야만 성취할 수 있는 궁극의 산물임을 말이다. 꽤 심각한 소설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정말로 재미있다. 먼 미래에도 인간의 행동 양식은 변하지 않은 것을 보여주면서. 1966년에도 쓰인 책이 전혀 시대에 뒤떨어짐 없이 오히려 세련되어 보인다는 점에서 마치 잘 익은 술을 마신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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