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설정한 벽 즉 고정 관념을 깨기는 무척 어렵다. 자신이 아는 것보다 더 많이 알려면 외부에서 가져와야한다. 자만하는 순간 타인을 인정하지 않고 상식을 무시하게 된다. 스스로 구속된다. 이런 벽을 쉽게 부숴지지 않는다. 충격이 필요하다. 이 책은 충분한 충격을 준다.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로마에 없는데도 로마 법을 따르는 것이 얼마나 부당한지 이 책은 증거한다. 수많은 역사적, 통계적 사실이 등장하지만 지루하지 않다. 선진국들의 언행 불일치 역사를 들쳐보는 것은 몹시 흥미로왔다. 그들이 주장하는 자본 자유화나 세계화는 시장이 필요한 선진국의 슬로건일 뿐. 나프타 협정이 멕시코를 거대한 하도급 업체로 만든 것을 보면 전율까지 느껴진다.
지구를 위해서는 안된 일이지만, 기후 협약을 왜 중국이 노골적으로 반대하는지 이제 충분히 이해된다. 이걸 받아들이면 자국의 산업 생산에 스스로 목줄을 얽는 격이다. 선진국은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는 자본도 기술도 있다. 게다가 이미 산업이 고도화되어 상대적으로 배출량이 적다. 반면 중국을 위시로 한 개발 도상국들은? 선진국들은 이미 그들만의 놀이터인 탄소 배출권 시장에서 놀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개발 도상국은 거기 참여해봤자 체급에 맞지 않은 경기에 끼인 격이 된다. 산업화 단계 때문에 많은 탄소를 배출할 수 밖에 없다. 선진국이 내세운 기준을 맞출 수가 없는 것이다. 침대에 맞춰 여행자의 키를 강제로 늘이거나 잘랐다는 무서운 신화를 떠올려보자. 여행자는 침대와 일치된 순간 죽는다. 개발 도상국도 기준을 맞춘 순간 경쟁력을 잃는다. 삶의 질을 높일 기회가 없어진다.
내가 알던 많은 고정 관념이 깨뜨려졌다. 나는 민주주의가 경제 성장에 따라 오는 것이라고 믿었다. 중앙은행의 독립은 철칙이라고 생각했다. 근거도 없이 주워 들은 지식을 짜깁기 해서 말이다. 그러나 이 책은 말한다. 좋은 의도가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님을, 무엇을 얻으려면 희생이 필요함을, 모든 것을 의심할 것을 말이다. 그러면서 저절로 떠올려졌다. 어엿한 경제 성장을 이룬 한국에서 살고 있는 나 또한 누군가 심어놓은 사과를 따먹고 있음을 말이다.
이 책의 진짜 장점은 따로 있다. 내용을 국가라는 너무 큰 그릇에 맞출 필요가 없다. 읽는 내내 한편으로 이 책을 처세술, 자기 개발에 대한 위대한 우화로 보았다. 나의 상황을 비춰보자. 나의 소득 수준은 상위권인가? 아니다. 그럼 소득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결국 자신의 가치를 높여야한다. 그럴려면 시간을 투자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마음에 대한 충분한 통제가 필요하다. 장하준이 박정희식 개발 독재를 높이 평가하는 것처럼. 내 마음은 연약해서 항상 놀고 싶어한다.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내놓아야 한다. 공짜 점심은 없다. 그 점을 잊지 말아야한다. 이 책은 여러모로 쓸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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