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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감상문

괴짜 사회학

by ehei 2010. 6. 6.
제목과 다르게 이 책은 사회학을 다루지 않는다. 정확히는 사회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의 슬럼가 밀착 취재기라고 하는 게 맞다. 그는 이미 이렇게 얻은 자료로 학위를 따고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이다.

양지와 음지가 있는 것처럼, 정부가 제공하는 기본적인 서비스가 미치지 못하는 곳들이 있다. 작가가 관찰한 곳은 마약을 파는 갱단들이 장악하고 있다. 예상과 달리 그들은 말썽을 기피한다. 주민을 이유 없이 두들겨 팬다거나 갈취하는 일들을 스스로 삼간다. 경찰의 주목을 받으면 장사가 위태롭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것이 그렇겠지만, 범죄 조직 또한 경제적 동기없이 작동하지 않는다. 스스로 순찰을 돌고 주민 대표와 협력해 애로 사항을 해결해준다. 기부하여 지역 사회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불법아니냐고?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들은 생각과 달리 무법 천지에서 살지 않는다. 필요한 서비스를 국가 대신 이들이 제공한다는 것만 다를 뿐.

이들을 어찌 비난할 수 있을까. 책에서도 은근한 비난은 주로 갱단보다 정부를 향한다. 부패와 예산 부족에 시달리는 시카고 도시공사가 결국 이런 환경을 만든 주범인 것이다. 도시공사의 주인은 시카고이고, 시카고의 주인은 알다시피 미국 정부이다. 왜 그럴까. 소득이 열악한 주민들이 세수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정치적 발언력 또한 약하다. 예산을 휘두르는 정치가들의 관심 밖에 있다. 그래서 지역 대표들은 주민들에게 투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라고 독려한다. 투표를 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가 어떠한 짓을 해도 괜찮다는 동의를 하기 싫다면 말이다.

정치가 입장에서 이들로 발생하는 민원을 생각하면 비정하지만 이들을 없애는 편이 좋다. 정치 자금 기부를 할 여유가 없는 자들이니 더더욱 상관없다. 무엇보다 생계에 쪼들려, 어떠한 핍박에도 조용한 이들이다. 반면 부유하고 정치적 발언력이 강한 재산권자들은 줄기차게 요구한다. 지역 사회 발전이란 이유를 내세운다. 용산 참사를 떠올려보자. 죽은 자는 보상을 받고, 산 자는 징역을 받았다. 자본주의는 인간을 생각하지 않는다. 현실은 재산권이 인권보다 앞에 있다.

작가가 관찰하던 슬럼가는 결국 강제로 철거되고, 주민들은 더욱 열악한 환경으로 편입된다. 그리고 거기에는 근사한 건물들이 차지한다. 뉴타운. 씁쓸하고 비관적이다. 그러나 책 중간에 작은 희망이 보여준다. 이런 지역을 어떻게 개선해야하는지 말이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 이들 지역을 방문한다고 했을때, 주민들은 스스로 환경을 개선하고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고자 힘썼다. 폭력 조직에 대항하면서 말이다. 결국 대통령은 바쁜 일정으로 그 지역을 스쳐 지나갔고, 마을의 희망은 사그러졌다. 그러나 생각하게 한다. 철거를 통한 지역 주민 몰아내기가 정답일까. 그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 먼지를 쓸어 양탄자 밑에 넣는 것은 아닌가. 게다가 그들은 원래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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