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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감상문

우리에게 과학이란 무엇인가

by ehei 2012. 3. 29.

크로스로드에 서 보내준 책들 중 두번째로 읽은 것. 과학인 뿐이 아닌 인문 분야에서 활동하는 이들까지 같이 쓴, 수필의 모음이다. 바로 과학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 다양한 관점의 수십 편의 글들을 읽는 재미가 있지만, 요약하는 건 좀 어렵다. 고로 나도 이런 주제로 글을 쓰고자 한다. '나에게 과학이란 무엇인가' 좀 거창한가?

 

내게 과학은 삶의 원칙을 주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한다는 원칙, 사실이 어떤 근거에 뒷받침되는지 의심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둘은 상호 모순으로 보인다. 오히려 보완적이다. 모든 현상을 체험하고 실험할 수 없다. 이른바 많은 사실들이 대중매체를 거쳐 전해진다. 여기에 관여된 자들은 명예 혹은 금전적 동기를 취하고자 정보를 가공할 경우가 있다. 사실에 덧씌워진 거짓말. 진품과 혼합된 위조는 구분이 어렵다. 내가 겪었던 사례를 생각해봤다.

 

첫째 사례. 지금은 연락도 왕래도 없는 친구가 있다. 그때는 잘 알고 지낸 사이였다. 어느 날 초대를 받고 집을 찾아갔다. 식사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문득 그가 어떤 권유를 했다. 당시 한창 유행하던 선불폰 판매였다. 아는 사람도 있겠지만 소개하자면 이렇다. 미리 통화 요금을 내고 쓰는 전화기를 파는 일이다. 취지대로면 쓰는 만큼 요금을 내는 합리적인 제도이다. 그러나 통신사 입장에서 고정 고객이 없어진다. 게다가 기본료도 내지 않는다. 활성화되면 통신사는 불이익을 보게 된다. 그래서 단말기 선택에 제한이 있고 취지와 맞지 않게 요금도 비싼 편이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당시에는 그랬다. 따라서 소비자는 외면했다.

 

그래서 선불폰 사업자는 점잖게 네트워크 마케팅이라 불리는 유인책을 들여 왔다. 그는 거기에 나를 끼게 하려 했다. 성공 사례를 들면서 얼마나 훌륭한 사업인지 말했다. 완곡히 거절하자, 그는 수수료 체계를 알려주며 말했다. 이익을 볼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했다. 그러나 간단한 계산으로 노력에 비해 이익이 터무니 없음을 보여주자, 그의 설득이 약해졌다. 후에 그는 그 일을 관뒀다. 다시 만난 자리에서 그는 핀잔을 줬다. 자신에게 적극적으로 불리함을 말하고 탈퇴를 권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었다. 나는 웃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었다.

 

둘 째 사례. 최근에 봤던 방송을 들어보련다. 마침 장모님이 식사를 위해 와 계셨다. 닭죽이 펄펄 끓어서 준비가 다 되었다. 그럼에도 장모님은 텔레비젼에 빠져 계셨다. 한 인물이 소개하는 건강법 덕이었다. 그가 주장하는 건 이랬다. 인체의 특정 부분을 손으로 톡톡 두드리면 통증이 씻은 듯 낫는다고 했다. 오랜 노동과 노령으로 통증에 시달리는 장모님은 이 방송에 쏙 빠지셨다. 시술을 받은 연예인들은 놀랍다면서 절대로 거짓이 아님을 강하게 주장했다.

 

굳은 허리가 절로 굽혀지고, 팔을 힘껏 잡아채도 내려가지 않는다. 시술을 받은 후에 생긴 일이다. 마침내 출연자는 최근 자본주의의 가장 큰 아이템을 꺼내 들었다. 바로 피부 미용과 다이어트. 여기에 좋은 에너지 게이트 - 그는 두드리는 곳을 이렇게 칭했다 - 를 알려줬다. 연예인들은 따라하면서 감탄사를 연발했다. 홈쇼핑 방송 같은 느낌이었다. 끝으로 다음 주에도 방송이 있음을 광고했다. 그제서야 장모님은 식사를 하러 일어나셨다. 

 

의학 지식이 풍부했으면 이치를 따지고 싶다. 고작 나의 부족한 상식을 끄집어내는 것이 고작이다. 일단 고통은 인체의 경보 신호다. 이를 무시하고 움직이면 결국 신체가 상한다. 시술로 통증의 원인이 없어진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나 통증의 원인인 물리적 손상이 그토록 빨리 회복될 수는 없다. 허리 디스크나 고통 사고 휴유증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모든 것이 꾀병이라면 가능하겠지만 말이다. 이런 걸 고등 교육을 받은 인재들이 즐비한 방송국에서 버젓이 황금시간대에 방영한다. 그 다음 날 뵌 장모님은 팔뚝을 두드리고 계셨다. 그래도 통증이 가시지 않자, 자신이 올바로 하고 있는지 의심하셨다.

 

기 술의 혜택을 맛보는 것도 좋다. 그것을 낳은 과학의 사고 방식은 더 좋다. 과학에 관심을 가지면 조금씩 그 사고 방식에 대해 눈뜰 수 있다. 단서를 모으고 가설을 입증하는 일. 합리적 의심에서 출발한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란다우의 도깨비 같은 사고 실험을 생각해보자. 과학은 값비싼 장비와 산더미 같은 자료로만 하지 않는다. 생각 만으로 과학을 할 수 있다. 또한 과학자들이 성과를 얻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라. 노력의 가치를 일깨워준다. 과학은 내 인생에 조금이나마 지혜를 주었다. 과학은 물질 문명에만 기여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무한한 정신을 키우는데도 단연 과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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