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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감상문

코벤트리

by ehei 2012. 8. 30.




일단 줄거리를 요약해보자. 3차 세계대전 후의 미국은 신정국가가 되었다. 기술 발전은 억압받지만 구시대의 유산이 모두 사라지지 않은 미래. 사관학교를 졸업한 조디는 독실한 젊은 신자의 소망인 천사 부대에 배속받는다. 예언자의 왕궁을 경비하던 그는 종교의 부조리를 발견한다. 종교에 헌신하는 성처녀들이 사제들의 성욕을 위해서 쓰이고 있었다. 그녀들 중 한 명인 주디스를 우연한 계기로 만난 조디는 소년의 애틋한 감정으로 좋아하게 된다. 하지만 현재의 체제에서는 짝사랑 외에 할 수 있는 건 없다. 그러던 중 주디스 또한 제비뽑기에 걸려 성처녀의 역할을 수행하려다 진실을 마주하고 기절한다. 이단심문까지 받게 된 그녀를 보다못한 조디는 카발이라 불리는 비밀 조직에 가입한다. 단순히 이교도 집단으로 알려진 그 곳은 신정일치 사회를 부수려는 혁명 조직. 그녀를 멕시코로 탈출시킨 그는 신성 미국을 자유 미국으로 일신시키기 위해 자유미국군의 일원으로 활약한다...

조디의 역할은 전사라기보다 사관(史官) 쪽이고 그러기에 일기로 된 역사를 읽는 느낌이다. 가벼운 활극 소설로 무거운 마음을 날리는데 좋은 청량제였다. 개인적으로 혁명 소설의 걸작이라 생각하는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의 초기 형태를 본 느낌이었다. 압도적인 전력 차를 극복하기 위해 행해지는 일들 - 자살 공격, 매체 조작, 요인 암살 등을 보며 선한 의도가 선한 행동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줬다. 희생 없는 삶이란 없는 것이다. 아무리 물리적인 소비가 없어도 시간은 끊임없이 버려진다. 주인공은 지휘자로서 방관자처럼 그려지지만, 피가 강처럼 흘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소설에서 타도 대상이 철저한 악인으로 그려지지는 않는다. 혁명 정부가 워낙 독자가 읽는 시대에 걸맞아 보일 뿐이다. 그럼에도 신념의 차이와 민주주의라는 평화적인 정권 교체 방법이 없는 한 총칼에 의한 타도 밖에 상대편이 취할 건 없다. 혁명 후의 모습은 이어지는 단편으로 짐작되어진다. 지금의 미국에서 조금 더 착해 보이지만, 평화에 안존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답지 않은 밋밋한 내용이었다.

소설은 조디의 성장을 그린다. 그는 철통처럼 믿는 신념을 몇 차례고 깨야 했다. 그 때마다 그가 아는 세상은 넓어졌다. 나는 어떤가? 한동안 진흙탕에 빠진 기분이었다. 올해 몇몇 사건들이 내 마음의 성벽을 두드려 부쉈다. 4월의 일은 그 절정으로 성문이 박살났다. 허영심과 자부심은 구름처럼 흩어졌다. 작아진 나는 허물어진 벽을 고치기보다 무너진 한 켠에 숨었다. 죄책감을 잊을 이유를 찾으면서. 시간이 약인 건 맞는 것 같다. 무엇보다 소중한 이와 함께 하기에 견딜 수 있었다. 이제 생각하니 믿음을 지키고 행복을 지키는데 온순함으로는 부족하다. 투쟁심. 향상심. 이기심. 삶에 대해 그런 것들이 필요해보인다. 그냥저냥 보내온 하루. 아깝지만 마음의 치유를 위해 필요했으리라. 퇴근길에는 여전히 그에 대한 일로 우울함을 느낀다. 하지만 생각한다. 나 또한 인생의 나그네. 작별 인사없이 떠나버릴 수 있는 한치 불명의 삶이다. 소설을 쓴 작가 마냥 낮잠 중에도 세상과 작별할 수 있다. 생각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그려오고 있지 않은가. 스스로를 위해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성취하고 싶다. 여정이 힘들고 멀지라도 열매가 잘 익은 포도밭을 떠올리며 황무지에 쟁기를 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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