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 속에 벌레가 들어있는 느낌이 유쾌할리 없다. 익히 알고 있는 촌충, 회충 같은 스타급(?) 존재들을 잠시 떠올리면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내 몸에서 꼬물거릴 그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가? 이 책은 그들의 사연을 들을 기회를 주고 있다.
책의 주요 내용을 요약해보자. 일단 기생충이 문자 그대로 벌레만 의미하는 건 아니다. 원생동물, 바이러스 같은 것들도 포함한다.
어쨌거나 내 몸 안의 영양분을 앗는 그들이 유익한 존재일리가 없다. 그러나 종(種) 차원에서 이는 진화를 위한 압력으로 존재한다.
이를 '붉은 여왕의 달리기'라고 표현한다. 현재 위치에 머무르려고만 해도 뛰어야 한다. 지금 위치를 앞서려면 두 배는 힘써야
한다. 특이한 생활사를 가진 기생충도 소개한다. 대표적으로 하나만 들어보자. 사막에서 사는 두꺼비가 있다. 그들의 방광에는 비가
오기를 기다리는 기생충들이 살고 있다. 비가 오면 두꺼비는 서로 만나 짝짓기를 한다. 그 틈에 기생충은 산란하고, 그 알에서
깨어난 기생충들은 다시 두꺼비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선 다시 비가 올 날을 기다린다. 이 외에도 숙주를 행동을 조종하고, 모양을
변형시키고, 거세를 시키기까지 한다. 역사에 남긴 그들의 족적도 살펴준다. 끝으로 그들의 순기능 또한 조명해준다. 기생벌을
친환경 살충제로 써서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또한 아토피 염증같은 치료가 힘든 병을 고치는데도 그들을 사용할 수 있다. 그들이
과도한 면역 기능을 줄이기 때문이다.
다 읽고 난 뒤의 느낌은? '신비한TV 서프라이즈'나 '스펀지'에 나올법한 내용들이 상상력을 자극한다. 내 부인에게 이야기하니
그만 좀 하라는 말은 들었지만... 재미있긴 하지만 확실히 비위 상할 법한 내용이 있다. 특히 식사 시간에 하는 것은 조심...
나처럼 말이다. 기생충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단편적으로 모여있다. 그래서인가 후반부에 가면 웬지 산만해지는 느낌이다. 어찌되었든,
그들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다 읽고 나서는 뭐든지 쓰기 나름이란 점을 알게 되었다. 기생충을 약으로 쓸
줄이야... 내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본다. 어려울 때 내게 불리한 점만 생각하지 않았는지. 때에 따라 유리한 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저 적당한 기회가 오지 않았을 뿐. 더 이상 기생충의 존재가 혐오스럽지 않다. 그들 또한 자신의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투쟁한다. 가끔 희한하게 보이지만 악착같이 생활하지 않는가. 나 또한 진화의 굴레바퀴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그럴 것이다.
신중하게 끈덕지게. 누구에게라도 배우겠다. 그것이 기생충일지라도 말이다.
읽는 동안 내내 장 속에 있는 나의 조그맣지만 엄청난 규모의 미생물들을 떠올렸다. 그들이 사회를 이뤄서 내 몸 안에서 화합의 춤을
추고 있는 순간을. 그들의 춤이 힘찰 수록 나의 몸도 같이 건강해진다. 그들에게 감사하며 나도 함께 어울려 춤을 추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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