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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감상문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

by ehei 2012. 9. 11.


핵전쟁 이후를 그린 폴아웃이란 게임이 있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폴아웃 3에서 육중한 방공호의 문을 열고 마주친 태양빛을. 그리고 보여지는 황무지와 폐허. 그곳을 다니며 마주치는 위협들과 각종 사건들. 그럴듯하게 꾸며진 가상의 세계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내게는 생생함이 대단했다. 덕분에 게임에서 흔히 다뤄지는 요정과 용이 거니는 환상 세계는 내 취향에서 멀어졌다.

마찬가지로 좀비 아포칼립스 또한 그렇다. 흐느적거리며 인육을 과하게 탐하는 좀비는 충분히 무섭다. 그러나 그들의 힘은 육체에 한정되어있다. 상상력을 발휘할 여지가 부족하다. 어쩌면 몇 번 감상한 좀비에 대한 서적이나 영화에 흥미를 못 느껴 더 그럴 것이다. 그러나 어느날 도서관에서 발견했다. 세계대전Z를. 상상 속의 좀비를 실감 가득하게 그려낸 멋진 책이었다.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 전세계적 재앙을 각국이 어떻게 다루는지 너무나 그럴듯하게 보여줬다. 그래서 작가의 다른 책 또한 번역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우습지만 나조차 좀비 사태에도 웬지 잘 이겨나갈 듯한 생각이 든다.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그들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최소한 내 마음은 준비 완료다. 책에서도 지적하지만 너무나 분업화된 인류 사회는 재난에 매우 취약하다. 전기만 끊겨도 현대 문명은 끝장이다. 이 전기는 이전에 죽었던 동식물의 정수인 화석 연료에서 나온다. 원자력? 비용 대비 효과는 좋지만 워낙 관리가 힘들고 자본이 많이 든다. 석탄이나 석유 만큼 값싸고 편리한 에너지원은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 핵융합이 차세대 후보지만, 전망을 보건대 백년 내에는 여전히 땅의 피를 뽑아 쓰는 수 밖에 없다. 굳이 인류 차원이 아닌 나만 살펴도 그런 점은 당연히 알 수 있다. 당장 집에 라디오, 손전등, 건전지도 없다. 식료품이 떨어지면 슈퍼마켓에 가는 것 외에는 모른다. 많은 화이트칼라 노동자처럼 근육도 약하고 심폐력도 떨어진다. 좀비 사태가 나면 아파트에 갇혀있다가 먹을 것을 찾아 길을 헤맬 것이다. 그러다...

책에서는 재난 대비를 위해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 이 책은 생존술 책이다. 몇십 가지나 되는 목록에는 총도 있다.  살기 위해 계단을 부술 것을 권하고 있다. 하하... 탄소강 곡괭이를 준다해도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다. 재미로 쓴 책에 과한 반응을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전형적인 도시인으로서 운동과 참을성이 얼마나 부족한지 실감했다. 재난은 좀비뿐은 아닌 것이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준비되어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작은 재난에도 속절없이 휩쓸릴 수 밖에 없는 처지다. 준비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책에서는 운동과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 것을 쓰고 있다. 인생은 한치 앞도 불명이다. 올해 그런 점을 더더욱 깨달았다.

참, 책에서 정신적인 무장을 얼마나 강조하는지 써야겠다. 요새 안에서 창고가 가득할 정도로 식량이 있다고 전부는 아니다. 스트레스와 지루함이야말로 강력한 적이다. 재밌게 놀고 즐길 것을 강하게 권한다. 의식있는 인간이 그저 먹기 위해 살지는 않는다. 탈무드 유머에서 본 문구를 써본다. '인간은 통나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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