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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감상문

엑스컴: 에너미 언노운

by ehei 2012. 11. 21.


고등학교 때 있던 컴퓨터로 주로 하는 일은 게임이었다. 그 시절에 즐겼던 게임 중에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몇몇이 있다. 다크랜드, 폴아웃, 엑스컴. 그 중에 무엇이 최고라고 꼽기 어렵다. 그러나 엑스컴은 많은 이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이 분명하다. 제작사가 손을 놓은 후에도 많은 모방작이 나왔고, 그 중에서는 원작과 동일하다는 이유로 소셜 펀딩을  받은 것도 있다. 나만 해도 지구를 지키고 싶을 때마다 이젠 고전 게임이 된 작품을 즐겼다. 그러나 허전했다. 발전한 기술에 맞춰 다듬어진 엑스컴을 다시 즐기고 싶었다. 이제서야 갈증을 풀 수 있게 되었다. 문명으로 유명한 전략 게임의 명가가 속편을 제작했다.

줄거리는 전작과 똑같다. 어느날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한다. 각 국가들은 엑스컴이란 단체를 통해 외계 세력에 대응한다. 국가마다 발생하는 일에 조치를 취해주지 않으면 그들은 지원금을 삭감하거나 심지어 탈퇴한다. 외계인에게 얻은 전리품은 연구하여 반격하는데 사용된다. 연구 결과는 유용한 아이템을 제조하는데 쓰인다. 병사는 그 아이템으로 좋은 전과를 얻어내고 경험을 쌓아 더 좋은 능력을 얻어 대응을 더 용이하게 해준다. 외계인을 지구에서 몰아낼 때까지...


영상으로 본 느낌은 게임이 가볍지 않을까 하는 우려였다. 액션이 강조되고 많은 부분이 잘려나간 듯 보였다. 일단 고백해본다. 주말마다 새벽에 자고 주일에도 온종일 즐긴 덕에 부인에게 폐인 같다는 말까지 들었다. 평일에도 짬짬이 즐기니 잠이 부족해서 낮에 커피를 마셔가며 버텼다. 그렇게 즐긴 결과는 이렇다.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변해버린 시대 감각에 맞춰 잘 만들었다는 느낌이다. 이걸 해보고 원작을 다시 접하니 확연히 알 수 있었다. 차근차근히 즐겨나가는 느낌은 여전히 훌륭하지만 불편한 조작과 느린 진행은 확실히 이 시점에서 대중적 요소는 아닌 것 같다.


어디에서 읽은 내용이다. 흘러간 유행가를 틀어주는 라디오 방송국이 있었다. 당연히 청취율은 낮았다. 그런데 노래를 조금 빠르게 틀었다. 그랬더니 반응이 좋아지고 덩달아 청취율도 올라갔다. 점점 생활 사이클이 빨라져서일까. 지루함을 느끼는 시간이 짧아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성공한 원작을 베꼈다면 매니아들이나 찬양하는 게임이 되었을 터이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한다. 게임은 대중 문화라는 것을. 성공하지 못한 게임은 예술은 될지언정 문화는 될 수 없다. 문화는 다수의 사람들이 받아들일 때  성립한다.

신작을 진행하면서 적당한 맵 크기와 스킬을 사용한 액션 요소는 게임을 보다 박진감있고 특색있게 즐기도록 했다. 사격 시의 연출은 봐도봐도 멋졌다. 내가 고이 키운 병사가 쓰러질 때는 외계인을 저주했다. 고참 한 명 빼고 분대가 전멸한 적이 있다. 혼자 남은 병사는 도망다니며 역습을 펼쳐 샷건으로 일곱 마리의 외계인을 죽였다. 긴장감이 해소된 것이 어찌나 통쾌하던지 동이 트도록 게임을 즐겼다. 피락시스는 턴 방식 게임의 전기를 보여준 것이다. 지루한 요소는 확 쳐냈다. 성장 요소는 스킬로 인해 더욱 부각되었다. 게임의 구성이 작아보이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어쩌면 재미있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다.

이 게임을 만든 제작사는 소위 블록버스터 급의 대작을 만들지는 않는다. 그들은 정말 재미를 추구한다. 이전에 즐겼던 알파 센터리, 해적, 문명 등 그들이 만든 게임 대부분은 나의 시간을 즐겁게 했다. 모든 개발사가 그들처럼 행동할 수는 없겠지만... 한 개발자로서 그들을 닮기위해 노력해보련다. 알찬 게임을 내 이름으로 출시하는 그 날이 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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