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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감상문

주먹왕 랄프

by ehei 2012. 12. 19.


20대 때는 열심히 시사회를 신청해서 보러 다녔어. 그런데 공짜도 한두 번이지. 몇 번 보니 재미없는 영화를 본 후에 시간이 아까운 생각이 많이 드는거야. 그리고 시사회는 관객이 적은 평일 저녁에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잖아. 내 친구들은 그렇게까지 시간내서 영화를 보지 않았어. 게다가 여자 친구도 없던 나는 홀로 영화관을 나서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았어. 그게 확고해지자 다시는 시사회를 찾지 않았지.


지난 주에 송년 행사를 했어. 좀 이른 것 같지만 어쨌든 피자 파티를 한 후 깜짝 이벤트를 한 후 영화를 보는 일정이었어. 나와 동료들은 따뜻한 미스터 피자를 먹으며 이벤트에 대해 궁금해했지. 여섯시가 되자 그게 뭔지 알 수 있었어. 정준하씨가 사무실에 찾아온 거야. 그는 '주먹왕 랄프'에서 주인공 랄프 역의 성우를 한다는군. 배급사에서 회사를 방문하는 이벤트를 하는데 이 곳이 간택된거지. 입담이 엄청 좋더군. 우리 모두를 즐겁게 하며 가져온 기념품을 나눠줬어. 나는 마지막으로 미니 게임에 참여했고 졌지만 작은 선물도 받았지. 그리고 연예인의 후광에 눈부셔하며 연신 감탄했지. 그의 방문은 하고 있는 일에 골치가 아팠던 내게 외과 수술 같았어. 그렇게 즐거운 기분인채로 이 영화를 보게 되었지.


영화 시작 전에 정준하씨가 다시 등장해서 소개와 당부를 했지. 시사회니까 홍보를 많이 해달라고 말이야. 그도 나도 유감스러웠던 건 영화가 자막판이라는 거야. 나는 메리다와 마법의 숲을 더빙판으로 보며 더욱 몰입했던 느낌을 기억하거든.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영화 크레딧에 픽사가 나오네. 픽사의 다른 영화처럼 시작 전에 단편도 틀어주고. 페이퍼맨이라는 제목인데, 고전 풍의 만화에 멋진 감성이 돋보였어. 남녀가 눈빛만 교차해도 드라마가 된다더니 정말 그러네.


영화의 줄거리를 요약해볼께. 오락실을 비춰주면서 시작하지. 영업 시간이 끝나면 게임에 있는 것들이 살아 움직여. 그들도 거기서 사는거지. 난 토이 스토리 생각이 나더라구. 랄프도 게임 안에서 일해. 건물을 부수고 주인공을 방해하는 역할이지. 30년째 악당 노릇을 하는 그로서는 현실이 불만족스러워.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늘 푸대접이고. 그렇다고 이 사회가 딱히 사유 재산이 인정되는 것 같지도 않고 말야. 인프라는 훌륭하지만 낙이라곤 없는 사회야. 답답하지. 동료까지 허구헌날 그러니 오죽하겠어. 게임 30주년 파티에서 문전박대를 무릅쓰고 들어갔건만 사이만 더 나빠지고 말이야. 보다못한 그는 메달을 따려 다른 게임으로 향해. 그게 있어야 인정해준다나. 그런데 여기 수많은 조역들도 있던데 왜 악역을 한다고 무시하는건지 모르겠더라구. 계급이란 어느 시대를 망라하고 존재한다는 가르침일까? 헛소리는 집어치울께. 암튼 랄프에게 우디의 향기를 느꼈어. 둘다 찬밥이었다는 점에서.

메달을 땄지만 사고로 또 다른 게임으로 날아가 버려. 거기서 어느 악동 소녀에게 메달을 뺏기지. 그녀는 그걸 경주 참가 비용으로 써버리고. 그는 화가 났지만 그녀가 오류가 생기는 인물이라 무시당하고 핍박당하는 걸 보자 동정심이 일었지. 남는 건 힘 뿐인 랄프는 그녀를 위해 캔디와 과자로 된 이쁜 차도 뽑아주고 주행 연습로도 만들어주지. 그러는 과정에서 서로 친해지고 말야. 이제 위기가 와. 사탕 왕은 그녀가 경주에 끼어서 우승하면 자신들이 사는 세계가 파탄될꺼라고 설득해. 주인공은 넘어가고 그녀를 차를 부수지. 원하는 메달을 따서 돌아갔지만 웬일 한 명 빼고 아무도 없어. 랄프도 없고 그를 찾으러 간 수리왕도 행방불명이 되고 게임은 고장 판정을 받고 주민은 모두 떠나간거지. 고장난 게임기는 플러그가 뽑히고 그건 세계의 멸망을 뜻해. 랄프는 오류로 알고 있던 그녀가 실은 게임 주인공임을 알게 되고 이 모든 걸 바로 잡기 위해 설탕 나라로 떠나. 그리고 해피 엔딩~

멋진 영화였어. 시작할 때 픽사 로고가 나와서 그런가. 그들이 여지껏 풀어놨던 이야기들이 짬뽕되었다는 느낌도 들지만말야. 개인적으로는 메리다와 마법의 숲 쪽이 더 인상적이서 그런지도 몰라. 그래도 오락실을 소재로 매끄럽고 이야기를 풀고 무엇보다 이야기의 주 배경인 설탕 나라가 너무 이뻐. 오레오 경비병은 정말 하나 갖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들더라구.

이야기의 원형은 몇 가지로 정해져있다고 하지? 사실 놀랍고 기가 막힌 이야기를 만드는 건 쉬운 것 같아.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틈 하나 없이 말끔하게 끌어가는 건 미국의 대자본이 투입되어야 가능한 일일까 생각도 드네. 게임 제작도 그 쪽은 규모 자체가 다르잖아. 게임 개발보다 자원 관리가 더 중요할 정도니 말 다했지. 허나 그래도 기회는 있는 것 같아. 대자본이 만들어내는 세련된 상품은 한정적이거든. 워낙 많은 돈이 들어서 함부로 모험을 할 수가 없거든. 대작 영화가 망하면 감독 얼굴 보기 힘들어지는 것처럼 말야. 그런고로 자본주의로 피어난 수많은 개성을 만족시켜줄 수는 없는 것 같아. 이야기가 전형적인 점은 아쉽지만, 잘 만든 상업 영화로서 시간과 돈이 아깝지 않은 영화임에 틀림없어. 어느덧 꽤 나이를 먹고나니 영화 곳곳에 숨겨진 게임 등장물들이 많이 보이더군. 이들을 찾아 구석구석 훑어보는 것, 꽤 좋은 느낌이었어. 그나저나 페이퍼맨은 정식 영화로 안 만들어질까. 사랑 이야기는 언제 봐도 흥미롭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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