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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끄적

스팸 글을 지우며

by ehei 2013. 1. 13.
지금은 회사, 집을 오가며 심심하게 살고 있는 나지만, 20대에는 나름 바빴어. 이렇게 다 지나간 일을 쓰는 것도 다 스팸 때문이야. 인터넷에 내가 공들였던 곳들이 스팸 글에 푹 덮인 걸 보니... 무섭기까지 하더군. 내가 죽는다면 부고를 알릴 필요도 없을꺼야. 산더미 같은 스팸에 내 블로그는 잠겨버릴테고, 얼마 후에는 휴면 계정이 되어 자동으로 삭제되겠지. 그런거 생각하면 참 허무하지만, 살아있을 때는 내게 큰 의미가 있지. 뭐 사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지. 이 블로그만 해도 나를 위해 하는거고 충분히 만족을 주니까. 미친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꺼라는 생각도 하고.


한채영 팬사이트



이 기회에 인터넷 활동에 대한 내 과거를 써볼까. 이제는 도메인도 없어졌지만 한채영 팬사이트(http://www.hancy.com)를 운영했지. 지금은 나 아닌 다른 이가 도메인을 갖고 있지. 그때 난 팬사이트에 올릴 자료를 찾느냐 참 바빴지. 휴일마다 그녀에 대한 자료를 찾고 한달에 한 번은 서점과 도서관을 차례로 가서 자료를 훑고. 그녀에 대한 기사를 한 페이지라도 발견하면 구입해서 스크랩했어. 덕분에 스캐너도 샀지. 아마 내 평생 그 때만큼 여성지를 많이 샀던 적도 없을꺼야. 다시 오지도 않겠지만. 동영상을 편집하는 것도 했지. 그녀가 출연한 첫 연극에 가서 빌린 캠코더로 몰래 촬영도 했지. 내가 간도 컸지. 무단 배포는 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지? 그만큼 팬심이 대단했었어. 아버지나 동생은 참 정성이 대단하다고 비아냥 섞인 말을 하곤 했지. 하지만 정말 흥분되고 재밌는 경험이었어. 사실 발단은 나도 연예인 팬을 해보자라는 작은 결심에서 시작했지. 매력적인 여성은 보기만 해도 남자의 기분을 업해주잖아. 누군가에게 순정을 바치는 느낌이라고 할까. 짝사랑을 하는 느낌이었어. 고등학교 졸업할 때 편지를 건넸던 여자에게는 꼴좋게 차였지만. 팬은 영원하잖아? 팬질을 하면서 그런 벅찬 마음을 가지게 해준 그녀에게 지금도 감사해. 지금은 중국에서 활동하는 것 같더라구.

팬 사이트는 이제 없어. 5년 간의 도메인 기간이 끝났는데, 더 운영할 이유가 없었어. 그녀의 활동도 잠잠해지고, 방문하는 사람도 거의 없었지. 참, 기억나는 일이 있어. 누군가 그녀가 원빈과 깊은 관계라는 주장을 한거야. 증거로 그녀였던가 그였던가 집 쓰레기를 뒤져서 나온 게 있다고 했고. 방문자는 폭발하고 소속사 매니저에게 전화도 왔지... 그런데 그녀를 위해 자신들이 사이트를 관리하겠다는거야. 내가 거기에 쏟은 정성이 얼마였는데 말이지. 나는 잘 대처할 수 있다고 하고 거부했지. 얼마 지나자 소문은 잠잠해졌지. 참, 사이트에 있던 자료는 모두 백업해두었지. 이걸 인터넷에 업로드해야할텐데, 바쁘다는 핑계로 시디 케이스에서 잠자고 있네... 사실 작년에 파란에 올리고 있었는데 망할 줄이야. 언젠가는 다시 올릴꺼야. 동영상은 유튜브에 올렸는데 방송사들이 하나둘씩 클레임을 걸어서 차단시키더군... 어쩔 수 없지.


PC 게임 블로그



난 게임도 좋아했지. 꽤 많은 패키지 게임을 모았어. 한 이백개 가까이 된 것 같은데 말야. 너무 많아 보관할 곳도 없고 하니, 라면 박스에 넣는 수 밖에 없었지. 먼지만 쌓이고 하지도 않는 게임을 처분하다 문득 생각이 들었지. 이것도 추억인데 너무 쉽게 내 손을 떠나보내는 것 아닐까. 그래서 동생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서 블로그(http://blog.naver.com/ehei)에 올렸지. 나중에는 테크노마트에 게임 도서관이란게 있다는 걸 알았어. 거기 담당자에게 양해를 걸어서, 그 곳에 있는 사진을 하나둘씩 찍었지. 휴일에만 찾아갔으니 기간은 한달 넘게 걸린 것 같네. 그래서 결국 모두 찍었을꺼야. 거긴 정말 한산하고 방문객도 얼마 없었지만, 날 보는 이는 이상하게 생각했겠지. 그래도 꿋꿋이 찍었지. 그래서 지금은 낯이 두꺼워진건가...

어쨌거나 정말 남는 건 사진 밖에 없네. 많은 게임을 팔아버리고 결혼과 이사 등 여러 일을 겪으니 이제 손에 꼽힐 정도 밖에 갖고 있지 않아. 무엇보다 게임 기획자에서 프로그래머로 전업을 하기 위해 결심을 한 덕분이지. 정말 그 때는 인생을 건 심정이었어. 다행히 원하는 쪽으로 일하고 있지. 그런데 너무 바빠. 게다가 인디 게임 제작같은 내 취미도 생겼으니 시간이 항상 부족하네. 그래도 가끔 그때 올린 사진들을 보며 흐뭇해하곤 하지. 그리고는 열심히 스팸 덧글을 지우지. 정말 패턴도 다양하고 양은 무지막지하더군. 들이붓는 것 같아. 하루에 백개씩도 다는  것 같아. 이런 일이 있었어. 어느 날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할아버지가 지나면서 비아그라에 대한 명함을 승객에게 던지면서 가더군... 그래 그것처럼 누군가는 필요로 하니까 하는거겠지.


라이즈 오브 네이션즈 카페



그 당시에 알파 센터리란 게임의 설정에 너무나 푹 빠져있었어. 브라이언 레이놀즈가 실질적인 제작자야. 이 양반이 독립해서 빅휴즈게임즈를 차렸지. 그리고 첫 작품으로 기념비적인 라이즈 오브 네이션즈란 게임을 냈어. 실시간 전략이지만 턴 방식에서 보던 개념이 많이 짬뽕되어있어. 무엇보다 부대 간의 상성이 엄청나서 저글링 웨이브 같은 건 통하지도 않았지. 정말 정말 재미있었어. 듄 2 이후로 전략 게임 분야에서는 놀랄만한 작품이었지. 그래서 난 카페(http://cafe.naver.com/ron)를 운영하기로 했지. 참 이제는 가봤자 소용없어. 스팸글이 너무 올라오고 나 자신도 흥미를 잃어서 운영 중지 상태니까. 어쨌거나 그 때는 사람들이랑 멀티도 하고 자료도 올리고. 그러다가 한국 마소 게임 담당자가 연락해서 확장팩 테스터도 했지. 그런데 신기하더군. 가입 없이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운영해도 가입하려는 사람이 많더군. 습관일까?

이 게임은 각종 게임 상을 엄청나게 휩쓸고 흥행도 성공했는데, 후속작의 실패가 좀 컸나봐. 라이즈 오브 레전드라고 스팀 펑크 장르였는데 마법도 공존하고 독특한 설정이었어. 그런데 이 장르가 좀 운수 안 좋기로 소문이 자자하잖아. 흥행도 안 되고 나중에는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확장팩도 만들었지. 결국 레이놀즈는 손을 뗐지. 나중에 커트 실링이 회사를 인수했는데 결국 망해버렸지. 회사가 없어져버렸어. 그는 이제 소셜 게임을 만든다고 하더라구. 오락실 게임처럼 PC 게임도 서서히 뒤안길로 가나봐. 업계 종사자로서 이걸 극복하는 건 큰 도전이지. 난 그에게 질문도 했었지. 라이브 오브 네이션즈 확장팩 발매 기념으로 한국에 왔었거든. 질문 시간에 내가 물어봤지. 알파 센터리 2를 개발할 생각은 없느냐고. 유감스럽게도 그럴 계획은 없다고 하더군.



여기



블로그 질은 원래 공부한 기록을 모아두고 나름 포트폴리오로 쓰려고 시작했지. 원래 읽었던 책 기록이나 남기려한 건데. 이렇게 계속되네. 처음에는 파란이었지만 망하고 여기로 옮겼지. 이렇게 나의 온라인 활동은 이제 이것만 남았네. 아쉽지만 다시 시간을 쏟기에 하고 싶은 다른 일이 너무 많아. 평일에는 회사 일에 가끔 공부도 해야하지. 휴일에는 청소도 하고 장도 봐야하지. 이러다 애라도 있으면 이거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하긴 지금도 글은 퇴근하는 한 시간 남짓 동안 쓰는 게 전부지. 그래서 통화하다 종종 훅 꺼지는 모토쿼티를 바꾸지 못하고 있지. 하드웨어 키보드 덕에 글 쓰기에는 최고거든.화면도 넓게 쓸 수 있고 말이야.

이렇게 즐거운 추억을 남겨준 인터넷 생활을 정리해봤군. 이런 것들은 이제 뒤로 해야겠지. 다 적당한 때가 있다면서. 지금은 내 자신에게 충실해야할 것 같아. 애도 낳아야하고, 공부도 하고, 게임도 만들고... 뒤돌아보면 난 다른 사람보다 모두 늦는군. 어쩌겠어. 늦는 만큼 충실할 수 밖에. 무엇보다 내 곁에 사랑하는 그녀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올해는 우리의 결실이 맺어지면 좋겠네. 아버지가 갑자기 가버리신 후에는 부쩍 부모가 되고 싶단 말이야. 인생은 모를 일이고 고되고 힘들지. 분명히 기쁜 날도 있고 행복한 날도 많았는데 말이야. 울적할 때는 평생 그런 삶에 찌든 것처럼 생각하지. 잊지 않고 싶어. 날 생각해주는 이와 웃음짓게 해준 기억의 조각들. 언젠가 최후의 날이 오고 내 블로그는 스팸의 먼지에 뒤덮여 사그러들겠지. 그래도 세포 하나로 시작한 내 삶이 이 만큼 흔적을 남길 수 있다니 신기하고 묘하네. 아무리 힘들고 모질어도 살아갈꺼야. 내일이란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잖아. 내일이 기대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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