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약속한 후 어느 날. 나는 그녀에게 입양을 하고 싶다고 했다. 후원도 좋지만 가족으로 인생을 책임져주고 싶다고 했다. 그녀도 찬성했다. 그녀는 마음씨가 곱다. 10년 동안 보육원에서 봉사했고, 2년 간 장애우 시설에서도 도왔다.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고 다른 사람 탓도 하지 않는다. 돈이 있으면 쓰고 없으면 안 쓴다. 그런 그녀이기에 말을 꺼냈던 것 같다.
나는 친자가 없어도 입양 만으로도 좋다고 했다. 웬걸. 그녀는 반드시 친자를 키워보고 입양해야 한다고 했다. 애를 키워보지 않으면 선입견에 빠질 것이라고 했다. 나는 나름 차별은 모르는 사람이라 생각해서 그렇지 않을거라고 했다. 그러나 이걸 내 고집대로 할 수는 없는 노릇.
세월이 흘러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입양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우리 부부는 교육도 받고 서류 준비도 착착 했다. 마침내 우리에게 입양될 아이를 만날 때가 왔다. 애는 만 세 살이었다. 그래도 17개월 밖에 안 되었다. 12월 생이라 그랬다. 사실 우리는 세 살을 원했다. 최소한 기저귀는 뗀 아이였음 했다. 어쨌든 우린 번복하지 않았다. 어떤 아이든 운명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처음 만난 아이는 낯을 많이 가렸다. 당연한 일이다. 다른 아기와 달리 조금 말랐다. 우리는 딸과 함께 매주 아이를 만나러갔다. 같이 키즈 카페도 가고, 어린이 대공원도 갔다. 가족 여행에 동반해서 숙식을 함께 하기도 했다. 어느 순간부터 금요일마다 집으로 데려왔고 마침내 위탁을 시작했다.
그리고 11월 26일 판결이 나서 입양이 허가되었다. 가정법원 재판 구경을 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은 채.
결혼 전에 약속했던 것이 10년 조금 넘어 이뤄졌다. 이래서 소망 목록이 중요한 걸까. 데려온 아이는 빠르게 적응했다. 이제 떼도 훨씬 많아졌고 가리는 것도 점점 많아진다. 자기 먹기 싫은 걸 주면 뱉어 버린다... 첫째 애를 키우지 않았으면 괜히 멋대로 진단을 내렸을 터였다. 첫 애는 의자에 앉아 발로 식탁을 밀다가 뒤로 자빠지기도 했다. 하도 안 먹어서 겨우 달래서 세 숟갈 먹이는데 한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가족이 늘어난 만큼 책임감도 늘었다. 프라모델 취미도 그만두기로 했다. 화분도 최대한 정리 중이다. 아이들을 성인으로 키우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걸 다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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