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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감상문

대마불사

by ehei 2020. 10. 31.

세계금융위기에 대한 책을 많이 읽은 것 같다. 허나 이 책에 대한 추천을 워렌 버핏이 한 만큼 안 읽어볼 수 없었다. 책은 방대한 내용에 수많은 등장인물이 나온다. 그러나 완전한 논픽션임을 자랑하듯 등장인물의 생각, 독백까지 나온다. 기자가 쓴 사실같은 소설이라고 해야할까. 철저한 인터뷰로 구성되었다니 찌라시같은 내용도 많이 들어있을 것 같다. 워낙 많은 인물이 나오는데 하나같이 능력자들이다. 어떤 사람은 동종업계 1년간 근무 금지로 몇천만 달러의 보상을 받았는데, 다른 회사 사장이 한시적으로 풀어달라고 사정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느낀 건 어떤 불세출의 능력보다는 인맥과 배팅이 전부같다는 것이었다. 그들 능력의 실체라는 게 말이다. 비싼 몸값일수록 상부에 끈이 많고 능력을 올린 사람일수록 남의 자산을 아낌없이 배팅하여 수익을 올린 사람이다. 그걸 못한 사람들은 사라진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은 산업은행의 리먼 브러더스에 대한 자본 참여가 좌절된 부분이었다. 혹자는 한국의 금융 경험으로는 그들 사업을 꾸리기 어려웠을 거라고 한다.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게다가 책을 읽으니 산업은행은 자본 참여를 통한 수익과 함께 자본 금융 시장에 대한 일종의 도제 수업 기회를 노렸다. 즉 배우려고 한 것이다. 노무라 증권이 리먼 파산 후 인수한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책만 봐도 파산이 임박하자 능력자는 알아서 탈출할 수 있었다. 산업은행의 참여 시점은 그보다 훨씬 일렀다. 이미 지난 일이며 다음에도 그럴 기회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기회는 10년 뒤에 올지 100년 뒤에 올지 모른다. 기회라고 생각하면 잡아야하는 것이다. 책에서 보여주는 성공도 결국은 기회를 잡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미 유동성의 중요성은 수많은 독서를 통해 알았지만 이 책은 그 점을 새삼 일깨워준다. AIG, 메릴린치, 리먼브러더스, 베어스턴스... 놀라운 수익을 올렸고 엄청난 자산을 가지고 있었지만 문제는 위기가 오면 자산을 덤핑으로 파는 것 외에는 현금화시킬 수가 없는 것이다. 어제 100원에 팔렸다고 해도 오늘은 10원에도 살 사람이 없는 경우가 있다. 금융위기가 바로 그런 때이다. 어쨌든 사람의 마음은 누그러지고 둔해지므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위기 의식은 약해진다. 허나 그때까지 버티려면 유지비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레버리지의 위험성이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누구도 미래를 알 수는 없다. 다만 배팅할 뿐. 좋은 자산을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 기회가 온다. 그러나 그것도 하늘이 정해줄 뿐이다. 워렌 버핏이 어리석어서 버크셔나 하인즈를 매수한 것은 아니다.

나의 투자 경험을 복기해보건대 아쉬운 순간은 너무나 많다. 그러나 아찔한 순간도 많다. 그리고 손실을 회복할 수 없을 것 같은 투자도 여러 건이다. 그저 보유 자본 하에 투자하며 홈런을 날릴 그 순간이 오기 만을 기도할 뿐이다. 그것을 위해 확률 높은 투자임이 틀림없는지 생각하며 말이다. 위기는 기회라지만 막상 위기가 오면 그것은 이 세상의 멸망처럼 생각된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지옥의 불구덩이, 천벌같이 말이다. 그러나 늦게라도 역전되어 기회가 올 것을 믿으며 최대한 버틸 마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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