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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감상문

천재들의 실패

by ehei 2020. 11. 14.

롱텀캐피탈매니지먼트(이하 LTCM)의 명성은 두 노벨상 수상자가 근무한 것만으로도 차고 넘칠 정도였다. 더구나 창업 핵심 멤버들은 살로먼 브러더스에서 회사 대부분의 이익을 창출할 정도로 능력있는 인재였다. 이 사실을 아는 월스트리트는 그들에게 돈을 투자하려고 불리한 조건도 기꺼이 감수했다. 수수료를 면제해주거나 펀드 내역이나 운용 방식에 대한 어떤 정보를 접근할 수 없는 정도였다. 그럼에도 투자하겠다는 곳을 골라 받을 지경이었다.

펀드의 초반 기세는 대단했다. 방법은 비교적 간단하다. 어떤 상품 가격이든 이른바 평균선으로 회귀한다는 일반 상식을 이용한다. 그걸 뒷받침하고 배팅 액수를 정하는 건 핵심 그룹이 만든 정교한 모델을 구현한 컴퓨터였다. 예를 들면 이렇다. 미국과 영국 국채 간의 역사적 통계를 이용해서, 이들 사이에 약간의 불일치가 발견되면 거기에 투자하는 식이다. 그러나 그 차이는 대체로 미미하다. 따라서 그런 간극을 증폭시키기 위해 파생상품을 사용한다. 어떤 상품을 거래해서 얻는 차익이 1원이라도 이를 이용하여 수백에서 수천배씩 늘릴 수 있다. 단순히 파생상품을 몇 단계 거래해서는 이런 수준의 증폭을 할 수 없다. 따라서 그들은 파생에 파생을 하는 방식을 택했다. 전성기에는 이 방식이 너무나 잘 돌아갔다. 그들 말대로 무위험 고수익처럼 보였다. 수수료가 20%에 달했는데도 연수익은 40%가 넘었다.

알다시피 그들의 종말은 생각보다 빨랐다. 책에 써있듯이 그들은 주사위에서 각 면의 숫자가 나오는 확률은 큰 수의 법칙 하에서 같다고 봤다. 그러나 팻테일-정규 분포의 양극단. 확율이 극악해야하는데도 실제로는 꽤 자주 생기는 현상-이 운명의 장난을 쳤다. 그들 말을 빌리자면 주사위 1이 1년 내내 나온 셈이 되었다. 펀드 자체 손실에 각종 상품을 유지하는 수수료에 파생 상품의 마진콜을 연이어 당하자 손해는 눈덩이가 되었다. 은행 연합의 40억 달러에 달하는 구제 금융을 받기 전에 펀드 자본의 90%를 날려버렸다. 직원 월급을 주기 위해 대출을 받아야할 지경에 이르렀는데, 정작 자신들의 자산또한 펀드에 불입되어 있었다. 그들이 펀드에서 날린 자신의 재산이 10억 달러가 넘었다. 로렌스 힐리브랜드라는 핵심 파트너는 모델을 너무나 신뢰해서 5천만 달러를 대출해서 펀드에 넣었을 정도였다. 에릭 로젠펠드 또한 그러해서 처가 쪽 사정이 좋지 않은데도 강권해서 펀드에 납입하게 했다.

롱텀의 교훈은 간단하게 요약된다. 남의 돈으로 배팅할 때 내 돈은 걸지말 것. 잘되든 안되든 수수료는 충분히 뜯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진짜 교훈은 유동성 확보이다. 긴급한 자금 소요가 있을 때 자산 가치의 하락 곡선에 있다면 시세보다 낮게 덤핑할 수 밖에 없다. 워렌 버핏이 실로 대단한 점은 그야말로 백년 제국을 세웠다는 것이다. 최근에 그의 투자 실적이 명성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그가 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LTCM도 그렇고 리먼 사태 때도 그렇고 금융사 수장들이 그의 도움을 기다리는 걸 보면 애처로울 지경이다. 그야말로 유동성 소방관으로 취급받는 것이다. 유동성이 충분하면 자산이 저평가받는 시점에 저가매수할 수 있다. 아니라면 자신의 자산을 그렇게 토해내야한다.

가정의 재무를 책임지는 가장으로서 유동성 확보가 투자 수익보다 중요함을 생각하게 되었다. 내 말년까지는 몰라도 적어도 내 자식들이 사회에 진출할 때까지는 경제적 안정을 선물해주고 싶다. 여유있고 풍족하지는 않더라도 사회에 진출할 때 채무를 안고 시작하게 하고 싶지 않다. 그러기 위해 무얼 하고 있는가. 나의 선택에 늘 불안해하지만 무엇보다 리스크 분배에 신경써야 한다. 훗날 10배 수익이 될 수도 있지만 그런 배팅은 자제해야 하고 포트폴리오의 일부에 그쳐야한다. 아무리 좋은 기회라도 신중하기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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