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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감상문

현대조선잔혹사

by ehei 2021. 1. 16.

이 책을 서가에서 꺼낸 건 북한에 대한 이야기로 생각해서였다. 배색도 인공기 같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 책은 남한 그리고 조선업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는 실로 비참하고 잔혹했다. 마치 텔레비전 광고에 나오는 월드비전 식의 이야기였다. 그런 범죄에 가까운 일이 바로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었다.


놀랍게도 기자는 위장취업을 했다. 그래서 하청 노동자의 삶을 며칠이나마 직접 체험했다. 그 며칠동안 가혹한 노동의 무게를 절감하고 죽음의 위기를 느꼈다. 일년에 사망자가 백단위로 나온다. 다치는 사람은 얼마나 많을까? 부상을 당해 불구가 된 사람도 나온다. 그러나 대부분 기본적인 산업재해보험의 혜택도 받지 못한다. 그런 경우 원청에 해가 되기 때문이다. 무사고 기록이 깨짐으로써 얻게 되는 불이익을 하청 노동자에게 전가한다. 영화에서 거대 기업의 횡포는 현실이다. 그들은 책임을 전가하며 가혹한 노동 조건을 강요한다. 거기에는 그런 조건조차 감수할 밖에 없는 노동자가 있다. 지방에서 그나마 벌이가 괜찮은 곳은 그런 곳이다. 더 나은 벌이를 위해 목숨을 건다.

이 책을 읽고 제 3세계에 태어나지 않는 나를 안도했던 것에 대해 부끄러웠다. 나라가 문제가 아니다. 그가 속한 계층이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사회는 특정 계층에 희생을 강요한다. 경제, 경제, 경제 ... 권위주의 시대의 애국이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변했다. 돈은 누구에게나 필요하기 때문이다. 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법의 허점은 다양하고 쟁점을 다투는데는 시간이 걸린다. 개인은 그걸 버틸 수 없다. 자본이 뒷받침된 기업에게 말이다. 사회의 지원 없이는 절망적이다. 그럼에도 여론 조성자들은 걸음마 단계나 다름없는 재해안전법이 기업을 죽일 것이라 단정한다. 그들은 기업에 빌붙어 사니까 당연하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타인의 인생을 파괴해서 얻는 행복이란 무엇일까? 그런 자들 중 이 책의 필자처럼 며칠이라도 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체험은 너무나 생생해서 취재로 얻을 수 없는 상세 묘사가 나를 전율하게 만든다. 그렇다. 그들은 부모님, 자식, 그리고 그들이 그런 곳에서 일하리라 생각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현장 실습 차 공장에서 일한 적이 있다. 전산 쪽을 했지만 예비고졸자를 그런 쪽으로 취업시켜주려는 곳은 없었다. 나는 처음에 전자부품을 조립하는 곳에서 일했다. 컨베이어 벨트의 지루함을 못 견딘 나는 같은 사업주가 운영하는 포장 상자 공장으로 옮겼다. 아직도 기억한다. 공장 안은 자욱한 분진으로 꽉 차있다. 아무도 마스크는 쓰지 않는다. 프레스로 상자를 찍어낸다. 그것은 두꺼비마냥 연신 입을 열었다 닫았다가 한다. 입이 벌린 순간 골판지를 넣고 다시 열리면 금이 만들어진 걸 꺼낸다. 그걸 다시 아주머니들에게 갖다주면 그들은 모양대로 뜯어낸다. 안전장치는 없었다. 나는 보조기사 역으로 일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프레스는 몹시 무섭지만 그때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손을 늦게 빼서 손 끝을 프레스에 낀 적이 있다. 몇 주일 뒤에는 나아졌다. 어쨌든 다니는 동안 어떠한 안전 교육을 들을 적도 장비를 본 적도 없다. 기사는 수입이 괜찮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프레스에 손이 불구가 된 사람 이야기도 했다. 아마 나도 거기를 계속 다녔을 수도 있다. 그리고 언젠가 불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저 내 탓만 했을지도 모른다. 20년이 지났음에도 회사는 노동자 탓을 한다. 노동자는 지식이나 도움이 없어 이런 일이 그저 내 탓이라 생각한다.

한국의 문제는 출산율이 아니다. 바로 인명 경시이다. 그리고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비극적인 사실이 일어나면 자책감에 요란한 행동을 한다. 그리고 안도감과 동시에 잊는다. 희생자들은 평생을 죄책감과 자책감으로 힘들어한다. 그리고 그런 상황은 교정되지 않고 반복된다. 내 자식들을 위해서 이 사회가 나아지길 바란다. 조금이라도 그런 것에 관심있는, 변화를 원하는 정치 세력을 지지하는 것이 나의 현실적인 대안이다. 그저 경제만 외치는 자들은 누군가를 희생시키며 당신을 부자로 만들어준다는 환상을 심어주려는 자들이다. 대개 그런 자들은 확신에 차서 자신의 말 외에는 무시한다. 그리고 자신을 위한 사회를 구축하려 애쓴다. 부자로 만드는 길은 단순하다. 남이 나를 부자로 만들어 주기를 기대하지 않기. 검소하게 자본을 모으기. 그걸로 자산에 투자하기. 덧붙여 변화를 바란다면 투표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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