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이 해외 출장을 가서, 내가 여러 업무를 대행하고 있다. 게다가 사이버 교육도 신청하고... 5월은 무척 바쁜 느낌이다. 모니터 4개를 노려봐서 그런지 눈도 아프고... 어쨌든 틈틈이 게임을 즐기고 있다. 최근에 포탈의 설정에 대해 읽을 기회가 있었다. 하프라이프만큼 독특한 소재가 가득 담긴 게임이었다. 이전부터 이 게임의 독특함에 대해서는 익히 듣고 있었다. 허나 나는 롤플레잉 외에는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았다. 퍼즐이라는 말에 더욱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입장이 달라졌다. 컨텐츠를 소비하는 입장에서 생산하는 쪽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경제적 가치가 있는 게임을 만들고, 그 게임으로 하여금 사회에 행복감을 더해주는 것이 나의 소명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자본을 들여 장기간 게임 만드는데 전력투구하기는 어렵다.. 그런 입장에서 게임을 즐길 때 개발 측면도 꼼꼼히 생각해보려고 한다. 그런 점에서 포탈은 엄청난 의미를 가진다. 한정된 자원으로 그들의 가능성을 훌륭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원작은 DigiPen의 학생들이 만든 나바큘라 드롭(https://www.digipen.edu/?id=1170&proj=501)이며, 유명 게임 회사인 밸브는, 이 작품을 보고 그들팀을 전부 채용해버렸다. 이로써 실험적인 색채가 짙은 포탈이란 게임이 빛을 보게 되었다.
포탈을 시작하자마자, 플레이어는 게임 내 주인공과 자신을 일치시킬 수 있다. 둘 다 현재의 환경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 그저 패션 센스가 떨어지는 옷을 입은 여자라는 것 뿐. 게다가 맨발이다! 그녀는 실험실 분위기가 가득한 방에서 깨어나, 다짜고짜 주어진 환경을 돌파할 수 있는지 실험하기를 강요받는다. 풀어나가는 주 요소는 포탈(portal)이란 차원 통로이다. 상당히 독특한 장치이다. 차원 통로를 앞 뒤로 만들면, 무한히 존재하는 나를 볼 수 있다...(코멘토리 모드에서는 부하 감소를 위해 9개로 제한했다고 말한다) 직접 보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고로 게임의 독특한 생태계를 이해시키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이 부분은 코멘터리 모드로 진행해야 그들의 노고를 확인할 수 있다. 테스터들이 이해하지 못하면 싹 뜯어 고쳤다. 게임도 하나의 제품으로서 품질 향상에 대한 노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밸브의 게임 디자인 철학이 궁금하다면 꼭 해봐야할 대목이다. 그들이 사용자로부터의 반응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알 수 있었다.
게임의 난이도는 그다지 높다고 할 수 없다. 점진적으로 난이도가 높아가지만 납득할 만한 수준이다. 놀라운 테크닉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적절히 포탈을 생성할 수 있으면 된다. 그래서 게임은 술술 진행되어 나간다. 이 게임의 멋진 특징을 꼭 적어야겠다. 퍼즐 게임에 이토록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다니...! 퍼즐 후반부에는 정말 깜짝놀랄 케이크(?)가 준비되어 있다. 막판은 나름대로 긴박하고 숨막히게 넘어간다. 굉장한 임팩트를 주는 마지막 장면은 말할 것도 없겠다. 근데 왜 하늘로 날아가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모든 갈등을 시원하게 풀어버린다. 물론 이것이 끝은 아니다. 이 게임의 인기에 결말이 바뀌어 버렸고, 최근에 속편이 나왔다.
밸브의 게임 개발은 많은 점을 시사해준다. 퀘이크 2 기반의소스 엔진을 계속 개량해서 사용하고 있는 점. 멋진 배경보다는 환경과의 반응성을 중시하는 점. 플레이 중의 삽입된 다양한 연출 등을 보면 과연 이것이 시험작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최고의 효율을 뽑아낸 게임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이디어를 중시하면서도 기본적인 품질에 매우 충실하다. 단순한 진행 패턴을 가진 퍼즐 장르를 취해서 이 만큼의 무게감을 가지도록 했다. 진행해나가면서 글라도스의 도발은 신선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퍼즐을 풀어나가면서 똑똑해진 느낌까지 준다. 이런 게임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찬사를 받는 이유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하프라이프 에피소드 3는 대체 언제 나오는 것인가...